[영화속의 심리학]다리(橋)는 생사의 선택지점

  • 입력 1999년 4월 18일 20시 37분


스무개가 넘는 한강 다리중 유독 한강대교 위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올라가기 쉬운 철제 아치빔 때문이다. 무모한 자살소동 탓에 한강대교에서는 교통대란이 잦았고 급기야는 아치빔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윤활유를 바르는 일까지 있었다.

살다보면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영화속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올드 팬들의 뇌리에 생생한 영화 ‘애수’에서 전장으로 애인을 떠나보낸뒤 비참한 생활을 하던 비비안 리는 워털루 다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미국의 대표적 감독 프랑크 카프라의 ‘멋진 인생’에도 제임스 스튜어트가 다리 위에서 자살을 결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천사의 도움으로 자신이 가진 작은 행복의 소중함을 깨닫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간다.

왜 사람들은 죽음을 결심하는 가장 심각한 순간에 다리 위로 가는 것일까? 다리는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 마음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통로로 표상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다리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무쇠칼. 그 누구도 삶의 향방을 알 수없는 좁은 문이다.그래서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인 다리 위에 서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인생의 의미를 묻게 된다.

‘애수’의 비비안 리와 ‘멋진 인생’의 제임스 스튜어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다리 위에서 비비안 리는 저승으로 간 반면, 제임스 스튜어트는 이승의 삶으로 다시 돌아온다.

현실에서 문제해결의 한 방편으로 다리에 올라 죽음을 ‘과시’하는 것은 그저 우스운 광대놀음일 뿐이다. 자살의 제스처는 자살과 다르다. 자살은 인간의 행동가운데 그 무엇으로도 되돌이킬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심영섭(영화평론가·임상심리전문가) kss1966@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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