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올해 대학교 4학년(딸)과 1학년(아들) 자녀에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한명 더 있답니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가면 다른 손님들이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볼 때도 많아요. 저 나이에 웬 늦둥이냐는 야릇한 표정들이지요.
일곱살배기 막내둥이 종식이는 첫돌이 되기 전에 불행하게도 이혼한 친부모품을 떠나 위탁모인 내게 왔습니다. 아직은 내가 자기를 낳아준 생모라고 믿고 있죠. 그런데 며칠 전 종식이가 울면서 유치원에서 돌아왔습니다. 헤어스타일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래요.
미용실에 데리고 가자니 이발비도 만만찮고 해서 내가 직접 아이 머리를 손질해 주곤 했는데 얼마 전 큰 맘먹고 구입한 한 전기이발기가 말썽을 부렸습니다. 지난 일요일 6년간의 실력을 믿고 머리를 깎아주려는데 윙윙 드르륵드르륵 하는 전기이발기 소리에 깜짝 놀란 아이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드는 바람에 뒷머리에 난데없는 고속도로가 생겼죠. 그래서 이리저리 자꾸 머리를 평평하게 고르다보니 어느새 바가지를 덮어쓴 꼴이 돼버렸습니다.
엄마 탓이라며 우는 아이를 한참 달래다 문득 30년도 훨씬 지난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더군요. 초등학교 4학년때이던가…. 파마머리와 짧은 커트머리가 막 유행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어요. 하루는 엄마를 따라 미장원에 갔다가 그 날로 단발머리를 유행에 따라 커트로 자르고 말았답니다. 친구들의 부러움 속에 으스대던 그때가 마치 어제 일인양 또렷한데 어느새 내 머리에도 흰 머리가 무성해졌습니다.
행여 종식이가 머리때문에 원생들에게 따돌림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곧바로 미용실에 데리고 가 머리를 새로 손봐주었습니다. 그래도 이왕 비싼 돈들여 산 이발기를 썩힐 수 없으니 다시 재도전할 생각입니다.(한 주부)
▼답장 ▼
이혼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을 서로 맡지 않겠다고 실랑이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종식이도 결국 부모의 이혼 때문에 위탁모가 키우게 됐지만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주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저라도 대신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싶군요.
우리들이 어렸던 시절에도 심심찮게 이 머리 때문에 사건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추석을 앞두고 읍내에 하나밖에 없는 미장원에 파마 하러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엔 숯을 피워 빨갛게 된 숯을 작은 알루미늄 집게 같은 것에 끼워서 머리를 말았죠. 조금 있으면 머리 밑이 뜨거워서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는데도 그저 예뻐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참고 앉아 있었습니다. 나중에 뽀글뽀글 해진 머리를 신기해서 하루 종일 거울로 들여다 보며 즐거워 했죠.
종식이도 크면 머리 때문에 생긴 재미난 추억을 떠올릴 겁니다. 아이가 따뜻한 가족의 사랑 속에서 밝게 자라다가 무사히 친부모 품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손숙<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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