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계의 눈」과 함께 온 英여왕

  • 입력 1999년 4월 19일 18시 58분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부군 에든버러 공작과 함께 방한해 지구촌의 눈길이 한국에 쏠리고 있다. 여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를 지켜온 영국의 상징적 구심점이다. 그러나 여왕의 영향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영국뿐만 아니라 54개 영연방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아 왔으며 그 중 17개국은 지금도 여왕을 명목상의 국가원수로 받들고 있다. 여왕의 움직임은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둔 것이지만 특히 국제사회의 여론주도층에 두터운 친밀감을 유지해왔다. 그만큼 소리 안나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번 여왕의 방한은 국제사회에 성실한 한국민의 모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다.

여왕의 이번 방한기간중 스케줄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환담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가까이 가기 위한 것으로 짜여졌다. 서울 인사동에서 한국의 전통예술인 서예와 그림, 도자기를 감상하고 대도시 속에 자리한 토착문화 공간의 독특한 분위기를 구경한다. 여왕은 이어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에서 한국인의 얼굴을 친화감 있게 그려낸 하회 탈과 유서깊은 민속마을을 보게 된다. 여왕은 21일 하회마을 방문중 귀한 생일을 맞으며 안동시가 전통 한국식 생일상을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한국민과 함께 하는 올해의 생일이 여왕에게 더욱 깊은 추억으로 오래 간직되기를 희망한다.

한영(韓英)관계는 지난 1883년 조선왕조 시절 맺었던 통상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것은 서구열강과 아시아 후진국간의 불평등 조약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49년 신생국이던 한국과 외교관계를 새로이 한 영국은 그 이듬해 6·25전쟁 때 5만7천여명의 장병을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병해 우리의 혈맹이 됐다. 그 이후 지금까지 영국은 한반도 주변4강 다음의 비중을 차지하는 7대수교국 중 하나이며 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매우 중요한 외교대상국의 위치에 있다.

여왕은 이번 방한중 산업현장을 방문하고 대기업 회장들과 오찬도 갖는다. 영국은 우리가 무역흑자를 내며 80여개 업체가 진출해 있는 유럽 제1의 교역파트너다. 영국 기업의 대(對)한국투자도 8억4천9백여만달러에 이른다. 여왕의 경제계 접촉이 다른 유럽국가들에도 국제통화기금(IMF)위기를 극복하는 한국의 모습을 제대로 알리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70년대 말 IMF 관리체제를 경험한 영국의 성원은 우리에게 힘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정치 안보 경제 다방면에서 두터운 관계를 다져온 영국과의 우의가 여왕의 방한으로 더욱 돈독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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