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소 샌님들 염통 사소, 염통요. …아무도 안 사니껴? 그라만(그러면) 염통 사먹지 말고 쓸개나 염통 없는 양반들 사서 넣어보소. 사람 것보다 훨씬 커서 오줄(오장육부) 없는 양반들 오줄 생기고, 염치 없는 양반 염치 생기니더. 여 있는 양반들 다 오장 쓸개가 바로 백힌 양반들인 모양인데, 자 그라만 염통 사먹지 말고 우랑 사소, 우랑요. 우랑 모르니껴. 소불알 말이시더. …늙은 양반 마느래(마누라) 둘씩 데리고 사는데는 이 소불알 아이고는 안 될께시더. 아따 남의 눈치는 머할라꼬 보니껴….”
▽안동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과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선생의 고명(高名)으로 상징되는 전통적 양반 유교 마을. 반상(班常)이 유별하던 조선시대에 그곳 하회마을에서 천민 중 천민으로 취급받던 백정이 쏟아내는 걸쭉한 입담은 풍자와 해학을 넘어 계급사회를 공존케 하는 파격이요, 넉넉함이자 멋이 아니었을까.
▽굿과 탈춤을 통해 상민은 양반에 쌓인 소외감과 원(寃)을 풀고, 양반은 탈의 익명성을 매개로 상민에 대한 통제를 살짝 늦추어줌으로써 공동체를 원만하게 유지해나갈 수 있었을 터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5백년 조선역사를 가능케한 참다운 양반문화의 일면이기도 하다.
▽하회(河回)의 우리 이름은 물돌이동. 낙동강물이 마을을 휘감고 나간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는데, 에돌아나가는 강물처럼 유구한 세월속에서도 하회마을은 우리 문화의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왔다. 그곳 하회마을에서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오늘 73회 생일상을 받는다고 한다. 이 또한 동서를 가로넘는 파격의 미학이 아닌가.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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