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95)

  • 입력 1999년 4월 20일 19시 29분


나는 문을 밀고 톱밥 먼지가 허공에 가득찬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소음 때문에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가 작업대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는 내 곁으로 마주 걸어오더니 귀에다 대고 외쳤다.

야아, 오 병장 이게 몇 년 만이냐? 나가자 나가.

임 중사가 내 점퍼 자락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그는 제 마음대로 내 손을 잡고 흔들어 악수를 하고 나서 아래 위를 찬찬히 훑어 보았다.

너 몰골이 말이 아니구나. 아직두 그 일 하구 다니냐?

뭐… 그런 셈입니다.

가만 있어 봐. 조금 있으면 점심 시간이니까 내 금방 나오께.

임 중사가 런닝 위에 공군 점퍼만을 걸치고 머리에는 톱밥을 얹은 차림으로 나왔다.

집에 가서 점심 먹자. 야 데모하구 다니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임마. 정신차려, 너두 인제 서른 넘었지?

나 내무반장님께 취직시켜 달라구 왔소.

어쭈 누굴 망쳐 먹을 일 있냐. 하여튼 들어가자.

우리는 임 중사네 블록 집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안에는 도배도 깨끗이 해놓았고 현관 위에는 비닐 장판도 매끈하게 깔려 있다. 그가 외쳤다.

여보 나 왔어!

부엌 쪽에서 유리문이 살그머니 열리더니 그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고개를 내밀고 손가락을 세워 입에 갖다댔다.

쉬이… 애기 깨요. 안방엔 들어가지 말아요. 방금 잠 들었으니까.

어 당신두 기억나지? 우리 오 병장 말야.

부인은 머리를 오글뽀글 라면처럼 파마를 했고 손에 벌건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나는 두 손을 마주잡고 인사를 했다.

예, 공부 잘하는 대학생 기억나죠. 당신은 오 병장이 뭐예요. 군대 얘기라면 지긋지긋해.

우리 밥 좀 줘. 배고파 미치겠네.

방 두 칸 짜리 집에서 건넌방이라고 들어가 보니 아마 국민학생이 있는 듯 방에는 아버지가 짜 준 책상과 책꽂이도 있고 어린이 그림책들도 얌전하게 꽂혀 있다. 임 중사가 말했다.

애 하나면 될 걸, 뭐 외롭다나. 괜히 늦자식 낳아 가지고 밤엔 잠 설치지, 텔레비두 맘대루 못본다니까. 근데 너 취직 얘기 정말야?

그렇대두요. 한 서너 달이 될지 한 달이 될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하여튼 밥값은 해야 될테니까.

너 임마 도바리지? 내가 다 안다. 큰 일 쳤냐?

내 일은 아니구요… 남들 때문에 잠깐 피해줘야 하거든요.

너 나까지 때들어가게 하는 건 아니겠지.

사실 별 거 아닌 일이에요.

그렇다면 좋아. 별 수 있냐, 그래두 의리가 있지. 다만 일당은 많이 못 준다. 넌 어차피 숙련공이 아니니까. 보조나 시다밖엔 맡길 일이 없어. 그래두 하루 세 끼 밥은 먹을 수 있을 거다. 그러구 여기선 내가 선임하사가 아냐, 사장님이라구 해라. 안됐지만 넌 내 고용인이니까 오군이라구 부르지. 찬성?

대대찬성입니다.

밥상이 들어왔다. 동우와 함께 서툰 손으로 지어 먹던 자취 밥이 아니라 그야말로 가정식 백반이었다. 김치도 입에 맞고 미역국도 부드럽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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