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측이 내놓은 운항일지에 따르면 문제의 헬기는 98년 한해동안 모두 1백1회를 운항했는데 그 중 인명구조 환자이송 등 본래 목적 외에 ‘도정(道政) 업무용’으로 24회 전용됐다. 유지사는 그 가운데 18회 정도를 이용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헬기를 타야할 만큼 긴급한 업무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서울에서 전주로 돌아갈 때도 소방헬기를 불러 탄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전주는 헬기장까지의 거리를 감안하면 차량이나 헬기나 시간상 큰 차이도 없다.
유지사는 32억원에 도입한 이 10인승 헬기를 비서와 단 둘이 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민간 헬기를 이용할 경우 8백50만원 가량이 들 정도니 엄청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이나 도민의 세금을 함부로 썼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소방항공대의 운영규칙에 ‘기타 도정업무’를 위해 헬기 지원이 가능하게 돼 있다는 것이 전북도측의 해명이다. 그러나 유지사가 도정업무 수행을 위해 서울에 다닌다 하더라도 특정한 용도가 있는 헬기를 자기 마음대로 타고다니도록하는게 ‘도정업무 지원’이랄 수는없다. 전북도측의해명은말이 안된다.
유지사가 소방헬기를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 한두번 사용한 게 아니고 전용기처럼 자주 이용한 것은 도덕적 해이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달에도 영종도공항 건설현장을 방문한 김기재(金杞載) 행정자치부장관이 소방헬기를 위급환자보다 우선 이용해 말썽을 빚었다. 고위공직자들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내것’과 ‘국민의 것’을 그렇게 분간하지 못하다니 참으로 딱하다. 그러고도 입만 열면 ‘국민과 도민을 위한 행정’을 말한다. 도덕불감증에 걸린 그런 공직자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다른 업무들도 과연 올바른지 의문이 든다.
국민의 주머니를 가볍게 여기는 공직사회의 풍토가 문제다. 공직자 자신의 돈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면 비용이 많이 드는 헬기를 웬만해서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것’은 ‘내것’이 아닌 ‘남의 것’이라는 식의 잘못된 의식구조에 근본적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여겨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공직자는 종이 한장을 쓰더라도 공(公)과 사(私)를 엄격히 구별할 줄 아는 일꾼, 알뜰한 가정주부같은 살림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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