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적으로 학부제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학문이 세상으로부터, 또는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할지라도 그 학문은 보호 육성된다는 전제 아래서이다. 세상 사람들이 너나 없이 잘 먹고 잘 살 궁리에 빠져 있을 때 굶주릴지언정 나만이라도 세상이 알아주든말든 저 비인기 영세학문을 지키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면 그런 이야말로 장학의 대상인 것이다.
인문학이란 인간생활의 여러 현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인간성, 즉 휴머니티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인문학에는 당장 돈벌이에 응용할 실용성은 없다. 그러나 나라가 커지고 선진국으로 될수록 인문학 같은 기초학문이 국익과 국력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나는 그 좋은 예를 몇 가지 알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는 방대한 규모의 민족학박물관이 있다. 30년전 오사카 엑스포 때 지은 건물을 개조해 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 1백여 민족의 생활 민속품과 역사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작은 민족이라도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전문가가 있다.
한국 같은 크고 중요한 민족은 상임연구원이 여러 명 있고, 알타이 위구르 에스키모 심지어 아프리카 부시맨 전공자도 있다. 세상에는 독특한 취미와 학문적 마니아로 이런 연구에 일생을 기꺼이 바치는, 사실은 행복한 인생들이 있다.
그런데 일본의 기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을 때 이곳 민족학박물관의 연구성과는 일본의 무역상들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다. 교역 상대국의 자연과 역사는 물론 생활 습성과 정치적 상황 등을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런 기초연구가 없었던 우리나라는 각 기업의 비전공 영업담당자가 거칠고 서툴게 그 순간부터 공부해서 대처했으니 그 시행착오와손해가 얼마나 컸겠는가.
10년 전의 일이다.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하게 됐을 때 놀랍고도 슬프게도 국내에선 한국어 러시아어 동시 통역사조차 구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소련과의 외교와 교역이 이루어졌으니 우리는 조만간에 해체될 나라에 돈을 빌려주어 결국 20억달러를 허공에 날릴 판이 된 것 아닌가. 이는 모두 인문학의 경시에서 나온 아둔한 결과이다.
내가 전공한 미학 미술사 또한 영세한 인문학이다. 그러나 이 학문은 뿌리가 깊어 1923년 경성제국대 창립 당시부터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문학부 철학계열 미학 및 미술사교실이었고 2명의 전임교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망학생이 거의 없어 해방까지 20여년간 한국인 학생은 고유섭(高裕燮)과 박의현(朴義鉉) 두 명뿐이었다. 그래도 이 전공은 폐쇄되지 않아 훗날 고유섭은 한국 미술사의 아버지가 되었고 박의현은 서울대에 미학과를 세웠다. 이런 것이 바로 학부제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날 우리 나라엔 이런 학문정책이 결여하게 된 것일까? 단언하건대 그것은 정책입안에 인문적 기초가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유홍준<영남대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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