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유홍준/人文學의 불안한 미래

  • 입력 1999년 4월 23일 19시 38분


지금 인문학은 존폐를 말할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으로 학부제를 실시하고 보니 ‘비인기’ 인문학에는 거의 지망자가 없고 대학정책은 이런 기초학문을 ‘경쟁력 없는’ 퇴출대상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학부제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학문이 세상으로부터, 또는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할지라도 그 학문은 보호 육성된다는 전제 아래서이다. 세상 사람들이 너나 없이 잘 먹고 잘 살 궁리에 빠져 있을 때 굶주릴지언정 나만이라도 세상이 알아주든말든 저 비인기 영세학문을 지키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면 그런 이야말로 장학의 대상인 것이다.

인문학이란 인간생활의 여러 현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인간성, 즉 휴머니티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인문학에는 당장 돈벌이에 응용할 실용성은 없다. 그러나 나라가 커지고 선진국으로 될수록 인문학 같은 기초학문이 국익과 국력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나는 그 좋은 예를 몇 가지 알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는 방대한 규모의 민족학박물관이 있다. 30년전 오사카 엑스포 때 지은 건물을 개조해 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 1백여 민족의 생활 민속품과 역사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작은 민족이라도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전문가가 있다.

한국 같은 크고 중요한 민족은 상임연구원이 여러 명 있고, 알타이 위구르 에스키모 심지어 아프리카 부시맨 전공자도 있다. 세상에는 독특한 취미와 학문적 마니아로 이런 연구에 일생을 기꺼이 바치는, 사실은 행복한 인생들이 있다.

그런데 일본의 기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을 때 이곳 민족학박물관의 연구성과는 일본의 무역상들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다. 교역 상대국의 자연과 역사는 물론 생활 습성과 정치적 상황 등을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런 기초연구가 없었던 우리나라는 각 기업의 비전공 영업담당자가 거칠고 서툴게 그 순간부터 공부해서 대처했으니 그 시행착오와손해가 얼마나 컸겠는가.

10년 전의 일이다.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하게 됐을 때 놀랍고도 슬프게도 국내에선 한국어 러시아어 동시 통역사조차 구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소련과의 외교와 교역이 이루어졌으니 우리는 조만간에 해체될 나라에 돈을 빌려주어 결국 20억달러를 허공에 날릴 판이 된 것 아닌가. 이는 모두 인문학의 경시에서 나온 아둔한 결과이다.

내가 전공한 미학 미술사 또한 영세한 인문학이다. 그러나 이 학문은 뿌리가 깊어 1923년 경성제국대 창립 당시부터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문학부 철학계열 미학 및 미술사교실이었고 2명의 전임교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망학생이 거의 없어 해방까지 20여년간 한국인 학생은 고유섭(高裕燮)과 박의현(朴義鉉) 두 명뿐이었다. 그래도 이 전공은 폐쇄되지 않아 훗날 고유섭은 한국 미술사의 아버지가 되었고 박의현은 서울대에 미학과를 세웠다. 이런 것이 바로 학부제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날 우리 나라엔 이런 학문정책이 결여하게 된 것일까? 단언하건대 그것은 정책입안에 인문적 기초가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유홍준<영남대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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