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들두 다 마찬가지 신세니까. 그렇다구 이 좋은 시절 일루 다 보내구 찌그러지면 인생이 뭐요.
어느 결에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우리는 두 병째를 시키고 고갈비 한 마리를 추가했다.
허지만 좋다 이거야. 언젠간 해 뜰 날이 오겠지. 우린 지금 전자회사 납품에 근근히 매달리구 있지만 가구 공장으루 나가야 큰 돈을 벌거야. 임 사장두 그걸 알구 있어요.
하다가 박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나에게 불쑥 물었다.
오 형, 정말루 우리 임 사장 시골 동생 친구요?
그런데요….
아냐 그짓말인 거 같애. 내가 보기에 댁엔 말야 시골뜨기가 아냐. 어딘가 책 냄새가 나거든.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군대에서두.
얌전해 보인단 얘기는 아니오. 하여튼 그 손을 봐두 그렇구.
게으른 손이죠.
아냐, 펜대 잡은 손이 그렇다구.
그러니까 박 형한테 일을 배울라구 그러지요.
일 배울 게 없어요. 그냥 내일부터 아침에 배당 받는대루 잘라 내기만 하면 되오.
말을 하다가 그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은 주점 입구로 나가서 외쳤다.
야, 맹순아 어디 가냐?
사람은 보이지 않는채로 목소리만 들려왔다.
가긴 어딜 가. 퇴근해서 집에 가지.
일루 들어와 봐. 한 잔 하자.
여자의 하얀 얼굴이 빼꼼 하고 나타났다. 그네는 주점 안을 살폈다.
나 밥두 안먹었단 말야.
어여 들어와. 맛있는 거 사주께.
그들은 내 앞에 나란히 앉았다. 박이 그네의 등을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야, 인사해라. 오늘부터 나하구 동거할 신입이다.
실례합니다.
안녕하세요.
오 형 얘가 내 애인이오.
핏, 애인 좋아하네.
그네는 벽에 붙은 식단표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너 저녁 안 먹었지? 아줌마, 여기 라면 하나. 김치에 파 썰어 넣고 한 그릇 얼른 내오슈.
나 라면 안 먹을래. 아줌마 여기 밥은 없어요?
공기밥 있지. 그럼 생태나 끓여주까?
박이 눈을 크게 떠 보였다.
맹순이가 오늘 간조 올리네. 너 생태탕이 얼만줄 알아?
싫으면 관 둬. 그러구 왜 맨날 남의 이름을 그따우루 불러. 이명순 씨라구 하란 말야.
나는 일이 끝난 이들 남녀의 정다운 싱갱이를 재미 있게 지켜 보았다. 박이 말했다.
야 맹순아 느이 방에 같이 사는 애 있지?
누구 말야, 경자?
아니 그거 말구. 빼빼한 애 있잖어?
으응, 순옥이.
그래 걔가 어디 다닌다구 했지?
와이샤쓰 공장 봉제부.
그래 그래 그 순옥이를 우리 오 형한테 소개해 주라.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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