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Arts]美 현대미술 장점은 다양성의 메시지

  • 입력 1999년 4월 25일 19시 38분


20세기는 미국의 시대라고들 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미술에 있어서도 20세기가 미국의 시대였을까? ‘미국의 시대’라는 말은 사실 1941년에 지독한 국수주의자였던 헨리 루스가 애국자적 사명감과 자신의 잡지를 팔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만들어낸 말이다.

그런데 최근 휘트니 미술관이 미술에 있어서 20세기가 정말로 미국의 시대였는지를 돌아보는 대규모 전시회를 기획했다. 모두 2부로 구성된 이 전시회 중 1900년에서 1950년까지를 다루는 제1부 전시회가 23일 막을 열었다.

이 전시회가 다루고 있는 20세기 전반 미국의 미술은 솔직히 말해서 보잘것 없었다. 하틀리, 오키프, 웨스턴, 드무스, 로렌스, 마린 같은 화가들은 미국이나 해외에서 별로 이렇다할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지금은 미국 내에서 이들의 명성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미국이 아닌 곳에서는 이들의 전시회를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미술에 있어서 20세기가 미국의 시대였다는 말은 20세기 후반이 그랬다는 말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이 미국의 시대였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지난 50년간의 미국 미술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진정한 미국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지 먼저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 달러의 위력 덕분에 얻은 명성을 미국 미술의 업적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로버트 휴즈가 밝혔듯이 미국 미술은 유럽의 영향에 대한 의존과 새로운 미국적인 것의 발명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때 추상적 표현주의가 등장했다. 추상적 표현주의는 미국이 유럽의 힘을 전혀 빌리지 않고 만들어낸 최초의 미국적 모더니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애국심에 불타는 미술사학자들은 이제야말로 미국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폴락이나 드 쿠닝의 작품이 냉전 기간중 활발하게 수출되어 당시 소련에서는 불가능한 표현의 자유를 미국의 화가들이 만끽하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추상적 표현주의는 완벽하게 미국적인 예술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출신인 드 쿠닝은 이전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들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고 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처음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미국 화가들은 아마도 60년대에 등장한 팝 아티스트들일 것이다. 그들의 성공은 전 세계에서 미국 대중문화의 위치가 급부상했던 것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중 문화의 이미지를 작품에 활용했던 것은 미국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 말콤 몰리, 독일의 지그마르 폴케, 게르하르트 리히터 같은 화가들도 같은 시기에 대중 문화에서 따온 이미지를 작품에 사용했다. 그러나 이미 자부심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미국인들은 80년대까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미국적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 화가들은 추상적 표현주의자와 팝 아티스트들의 뒤를 이어 등장한 개념주의자, 미니멀리스트, 후기 미니멀리스트들이었다. 도널드 저드, 브루스 나우만, 에바 헤스, 로버트 어윈, 리처드 세라 등의 화가들이 여기에 속한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등장한 화가들은 폴락, 라우센버그, 존스 같은 화가들이 설립한 미국적 전통에 의존하는 첫세대였다. 그들의 작품은 미국적인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스미손같은 화가는 미국적 풍경 속에서 작업을 했고 저드와 세라같은 미니멀리스트와 후기 미니멀리스트들은 미국도시의 산업사회적 모습을 파고들었다.

미국인들은 지금까지 내내 미국적 특징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미국 미술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 미술이 존재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탈리아인들이 라파엘로나 티치아노의 작품을 바라보듯이 바라볼 수 있는 화가와 작품이 미국인들에게는 없다. 폴락이나 앤디 워홀의 작품이 외국 사람의 손에 넘어갔을 때 미국인들이 국가적 유산을 잃어버렸다며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미국 미술의 장점은 어느 한가지 것을 미국적인 것이라고 내세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에 있다.

특히 90년대에 들어 냉전이 끝나고, 여러 나라의 국경이 무너지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미국인들은 다양한 세계의 문화를 보는 시각을 기르게 되었다.

다양성은 이제 하나의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미국 미술의 유력한 테마가 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 특히 뉴욕은 세계의 경제 중심지라는 위치를 바탕으로 세계의 예술이 만나는 교차로가 되고 있으며 따라서 예술의 다양성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퍼뜨리고 있다.

어쩌면 먼 미래 사람들은 미국이 만들어낸 미술 작품이 아니라 세기말에 퍼뜨린 세계문화의 다양성에 관한 메시지 때문에 20세기를 미국의 시대로 규정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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