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젠은 1881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그는 빈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학교수가 되었다. 유태인이었던 그는 히틀러와 나치에 밀려 1940년 미국으로 이주, 197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는 점잖은 유럽 신사라고만 생각했다. 켈젠의 저서 ‘순수 법이론’은 법학에 있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같은 책이었다. 막스 베버와 탤콧 파슨스같은 학자들이 켈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연구를 진행했으며 로스코 파운드는 그에게 “전 세계 법학계의 뛰어난 인물 중 하나”라는 찬사를 보냈다.
켈젠은 법의 합리성을 특히 강조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법은 법제화된 정치나 법제화된 도덕 이상의 것이었다. 정치와 도덕 이상의 존재가 되지 않는다면 법은 서로 다른 인종, 종교, 언어, 민족 사이의 충돌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회를 지탱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러 다른 민족과 인종이 모여사는 사회는 연약하기 때문에 법에 의지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켈젠은 서로 다른 민족 사이의 균형이 가장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 제국의 진정한 시민은 민족간의 분쟁에 끼어들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고 있던 유태인들뿐이었다. 유태인인 켈젠은 제국을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은 공식적이고 중립적인 법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결국 민족분쟁 때문에 깨지고 말았다.
같은 맥락에서 켈젠은 국제법의 취약점들을 발견했고 말년을 국제법 연구에 바쳤다. 그는 공식적이고 중립적이어서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법만이 평화를 만들어내고 지키는 본연의 목적을 다할 수 있다고 끝까지 확신했다.
▽필자 번하드 슈링크〓전후의 독일을 다룬 소설 ‘독자(The Reader)’의 저자이자 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