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게 그 한턱이다 왜?
흥, 겨우 이걸루는 안되겠는데.
그럼 좋아 다음 주에 영등포 나가서 영화 구경 시켜주께.
명순이는 탁자 너머로 나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야야, 그러지말구 이따가 우리 방으루 순옥일 불러 와라.
안돼. 오늘 걔 야근 들어갔어. 나두 잔업하구 눈치 보다 빠져 나오는 거야.
그네가 저녁 밥을 먹는 동안 우리는 소주 두 병째를 마저 비웠다. 식사를 끝낸 명순이를 위해서라며 핑계김에 박과 나는 소주 세 병째를 마시기 시작했다. 박은 취기가 제법 올랐는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나 아무래두 임 사장 하군 같이 일 못 하겠어. 이거 봐 오 형은 우리를 잘 몰라. 뭐 임 사장 귀에 들어가두 상관 없지만 말야. 지가 언제부터 사장이냐구. 나하구 거의 같은 시기에 입사했었어. 함께 나와서 목공장 운영하자구 박 형 기술만 믿는다구 할 때가 언제야. 월급두 아니구 일당이니 기술자 대우가 이게 뭐냔 말야. 나 아무래두 안되겠어. 직장 옮길 거야.
큰소리를 치다가 박은 내 얼굴을 보자 말투를 바꿨다.
오 형 어떻게 생각하쇼? 개인적인 정은 정이구 돈은 무서운 거 아뇨?
어디 옮길 직장은 알아 봤어요?
아 그러엄, 나 오라는 덴 많지. 가구공장에서는 목공 기술자가 없어서들 야단이오. 이까짓 텔레비나 라디오 박스 납품 일 하구는 상대가 안 돼요. 우리네선 그래두 전축이 제일 단가가 높은데 왜 그런지 아슈? 장식이 많이 들어가잖아. 가구는 디자인 값으루 남겨 먹거든.
명순이가 잠자코 앉아 있다가 참을 수가 없었는지 술잔을 입에다 탁 털어 넣고는 한마디 했다.
갈 땐 가더라도 실속 있게 입 다물고 있다가 옮기지 왜 먼저 큰소릴 치구 그래. 하여튼 속이 없어….
야 맹순아 이게 다 너 멕여 살릴라구 하는 노릇이다. 너두 결혼을 해야지.
어이구 너무 황송해서 피눈물이 나네요. 지 한 몸 건사나 잘 해야지. 멕여 살리긴커녕 월말에 외상 갚는다구 돈이나 꿔 달래질 말어. 아유 인제 가 봐야지.
명순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박은 같이 반쯤 몸을 일으키며 그네를 막았다.
가긴 벌써 어딜 간다구 그래. 한 잔 더 해야지. 이제까진 우리 오 형 신입 턱이구 내가 이차를 살건데.
가서 씻구 자야 돼. 나 낼 아침 조기 출근 반이야. 먼저 실례합니다.
어어 저게 지 맘대루야….
명순이가 가고나서 박은 다시 말수가 적어졌다. 나는 그가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생각을 내게 털어 놓은 걸 후회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흐트러진 생선 살을 젓가락으로 뒤적이고 있었다. 내가 박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실은 나두 한 두어 달 지낼 곳을 찾느라구 임 선배한테 찾아 왔어요.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으면 보다 유리한 직장을 찾아야겠지요.
여기선 아무래두 발전이 없다구. 차라리 공단에 가서 전자 계통이나 선반 일을 잡으슈. 오 형은 그래두 고등학교 나왔다니까 일년이면 금방 기능공이 될거요.
<글:황석영>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