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연금 이대로는 안된다

  • 입력 1999년 4월 25일 19시 47분


‘봉급쟁이가 봉이냐’는 불만스러운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국민연금 확대실시에 따른 도시지역 자영자 등의 평균신고소득은 84만2천원. 직장인 가입자 평균소득(1백44만원)의 58%에 불과한 액수다. 이 가운데서도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 고소득 전문직종의 하향신고경향이 두드러져 고소득층의 공적 부조를 통한 소득재분배라는 연금제의 본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오히려 봉급생활자의 주머니를 털어 고소득자의 배를 불리는 ‘소득 역진(逆進)’ 현상마저 나타나게 됐다.

15일 마감된 도시자영자와 4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 일제 소득신고의 공통된 특징은 소득신고의 하향추세. 룸살롱 주유소 변호사 탤런트 배우 등 99개 업종은 국세청 과세소득보다 낮게 신고했으며, 한의사 목욕탕 여관업 수의업 등 38개 업종은 통계청 조사소득(97년)의 80%에도 미치지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의사의 8.1%, 변호사의 8.2%, 치과의사의 9.4%, 한의사의 15.8%, 회계사의 25.4%는 휴업 폐업 등 납득할 만한 사유도 없이 직장인 가입자 평균소득 미만으로 신고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같은 상식 이하의 ‘소득 줄이기’는 국민연금이 사회안전망 기능을 하기는커녕 형평성을 둘러싼 새로운 불만요인이 될 우려를 낳고 있다. 당장 이들 고소득자의 소득 하향신고로 내년부터 연금을 받는 12만명의 수령액이 올해보다 6.5∼13% 줄어들게 됐다. 더구나 기존연금 가입자 중 내년에 처음으로 연금을 받는 4만∼5만명은 이처럼 낮아진 연금액을 기초로 평생 연금을 지급받게 돼 연금수령기간을 통틀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됐다. 이에 따른 불만과 반발을 제대로 수습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IMF관리체제의 여파 등으로 아직 전체 가입대상자의 절반도 끌어들이지 못한 ‘반쪽 국민연금’이 이렇게 꼬이게 된데는 정부당국의 준비 소홀과 홍보부족 등 안이한 대처와 무리한 강행 탓도 작지 않다. 이제부터라도 철저한 보완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해 내야 한다. 성실신고를 유도한다는 식의 소극적 방법으로는 안된다. 정밀한 소득파악기법을 개발해 조세 및 복지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단시일 내에 어렵다면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소득비례 기능 비율을 현재의 1대1에서 2대3 또는 3대4로 조정하는 방안 등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간 소득의 형평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국민연금제는 성공할 수 없다. 정부당국은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기 전에 설득력 있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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