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별로는 총 규제 건수의 반(48.8%)에 가까운 5천4백30건이 폐지되었다는 집계다. 그리고 총 규제건수의 21.7%인 2천4백11건이 개선되었으므로 그것을 합치면 70%가넘는규제가이땅에서사라져 국민이 그만큼 해방되었다는 주장이다. 수치만으로 보면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나날이 공무원을 마주하는 국민의 체감(體感)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여전히 공무원이 복잡한 모순투성이의 규정을 내세워 안된다고 주장하고, 규제철폐 사실조차 모르면서 고자세로 우기는 일도 없지 않다. 한마디로 정부는 정부평가 따로, 국민느낌 따로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 정부는 규제의 내용을 살피지 않고, 국민과 기업이 진정으로 어떤 것을 풀어주길 바라는지보다는 건수와 실적위주로 규제개혁을 추진해온 측면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규제의 품질’을 우선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지 탈환식으로 추진하던 방식을 버리고, 낮은 데 민생의 진짜 불편과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규제개혁이란 본시 규제의 대상이 되는 국민이나 기업을 중심으로 문제를 파악해서 공급측면의 애로(隘路)를 타개, 행정서비스 흐름을 합리적으로 만들고 국가경쟁력을 드높인다는 발상이다. 그런데 이런 공급사이드의 개선은 원천적으로 시간도 걸리고, 그 효과도 장기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어서 피부로 느끼기까지는 시차가 존재한다.
이러한 본질적 측면을 간과한 채 실적위주에 매달리기 때문에 정부와 국민 사이의 괴리는 클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규제개혁을 ‘품질’위주로 바꾸어 점검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철폐하고 개선했다는 70.5%의 ‘업적’들도 내용을 살펴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도 있고, 실제로는 일선 창구에 가보면 시퍼렇게 살아있는 규제도 있을 수 있다.
정부의 규제혁파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데는 공무원들의 재량권 거머쥐기, 밥그릇지키기같은 욕심이나 공직 내부의 집단이기주의 등 숱한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장애요인을 날카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현장위주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규제개혁의 참 성공은 요원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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