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비서는 「私見」, 대통령은 경고

  • 입력 1999년 4월 26일 19시 32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정계 대개편’을 주장한 김정길(金正吉)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주의를 주었다”는 박지원(朴智元)대변인의 발표다.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 참모이자 보좌관인 정무수석에게 공개 경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사문제 등으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권력의 최고 핵심부에서는 그같은 불협화음이 들리고 국무총리와 여야의원 등은 주말마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골프정치’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김수석은 지난달에도 김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상반기 내각제논의 유보 합의’와 ‘중―대선거구 검토’관련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해명했던 김수석은 이번 ‘정계 대개편’발언도 똑같은 방법으로 발을 빼고 있다. 우선 그처럼 민감한 문제들을 던져 놓고 사견(私見)이라며 물러서는 김수석의 태도는 옳지 않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대통령이 시킨 일도 아니고 대통령의 뜻을 읽은 것도 아닌, 사견을 공공연히 얘기할 수 있는가.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여러차례 되풀이했다.

이때문에 김수석의 발언은 고도로 계산된 ‘치고 빠지기’전략이 아니냐는 얘기가 무성하다. 지난번 ‘상반기 내각제논의 유보합의’발언만 해도 김수석이 말한지 약 한달 후인 지난 9일 ‘두분’(DJP)은 내각제논의를 8월말까지 유보키로 했고, 중―대선거구 문제도 현재 여권에서 계속 거론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경우도 단순한 사견이 아니라 여권 고위층과 어떤 교감이 있었고 그것을 정무수석이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이야 어떻든, 무언가 당당치 못한 정치, 속된 말로 ‘꼼수정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내각제 문제에 대한 당의 현재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서 공동여권의 틈새를 노리려는 듯한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떳떳지 못하다. 이같은 정치권의 구태가 사라지지 않는 근본 원인은 내각제 개헌문제를 DJP한테만 미뤄놓고 미봉으로 피하려는 공동여당의 정파적 담합때문이라는 점을 우리는 다시 한번 지적해 둔다.

정치권이 내각제문제의 사슬에 묶여 ‘제밥 찾기’에 몰두하다보니 아무리 심각한 사회문제가 대두해도 여야는 형식적이고 원론적인 훈수만 할 뿐, 제대로 된 해법이나 대책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당수 정치인들은 사회분위기나 국민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휴일이면 떼지어 골프장에 몰린다. 김총리의 경우는 지난 일요일 울산에서 7개팀을 예약해 골프를 쳤다고 한다. 골프를 치라 마라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국민의 심사도 헤아려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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