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세상읽기]교총과 교육부장관의 갈등

  • 입력 1999년 4월 26일 19시 32분


『연금법 개정과 관련해 교원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4월12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한 말이다. 닷새 뒤 열린 교총의 대의원회에서 김민하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은 이렇게 맞받았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교육자는 한사람도 없다.』 불신의 병이 이보다 더 깊을 수 있을까.

교총은 교육부의 개혁정책을 비난하는 광고를 내고 이해찬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교육부의 ‘교원 죽이기’ 때문에 교육 현장이 공황상태에 빠졌다는 것이 교총의 주장이다. 최근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연금 수령액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1만명이 훨씬 넘는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을 보면 교원사회의 동요가 분명 심상치는 않다.

무더기 명퇴신청에 대해서는 일부 동정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교직을 천직으로 삼고 사노라던 평소의 말씀이 무색하다는 냉소적 반응도 적지 않다. 전교조 사태 당시 정부를 거들었던 교총의 서명운동도 그렇다. 교원의 정치적 집단행동을 그토록 비난했던 교총이 한마디 변명도 없이 똑같은 행동을 벌이는 것은 아무래도 볼썽사납다. 수천명의 교사를 파면한 근거법률이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교육부가 ‘법대로’ 처리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성숙한 증거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 대립과 반목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체력단련비 등 급여의 삭감은 다른 공무원들도 똑같이 감수한 ‘국제통화기금(IMF) 고통분담’이다. 수행평가제는 대학진학에 큰 영향을 미치는 평가의 권한을 교사에게 부여하기 때문에 교권 확립에 오히려 도움을 준다. 촌지 척결이나 체벌 금지처럼 민감한 문제를 놓고 교육부가 현장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바람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는 것이 유력한 가설이다.

이 가설은 정부와 교원들이 상이한 ‘인식과 기대’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교직은 천직 또는 성직이라는 관념이다. 이런 관념은 거기에 맞는 특별한 존중을 요구한다. 성과급제나 수습교사제의 경쟁논리는 그래서 특별한 반감을 부른다. 또 다른 관념은 선생님은 아이들을 사람답게 만들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체벌을 일괄적으로 금지하거나 일부학교의 촌지 문제로 교사들을 매도해서는 교육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교직을 다양한 전문직종 가운데 하나로 간주할 경우 차등적 보수를 비롯한 경쟁원리의 도입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생님의 일은 아이들의 지적(知的)성장을 돕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그에 필요한 전문적 능력을 키워야 한다. 촌지나 체벌은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전문직의 직업윤리에도 맞지 않는다. 아이들은 저마다 개성을 존중받으면서 정신적 지적(知的)으로 성장하는 바로 그만큼 인격이 형성되기 때문에 별도의 ‘전인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얻는 여러 원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관점의 선택은 개인의 경험과 철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선생님들에게 무한책임을 지우고 아이들에게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군사부일체’의 낡은 관념은 이제 벗어던질 때가 됐다. 학교는 사회와 가정이 망가뜨려놓은 아이들을 고쳐주는 애프터서비스센터가 아니다. 선생님들이 그런 짐을 기꺼이 맡아준다면 고마운 일이겠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학교와 선생님이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일이 없도록 반성하고 경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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