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능참봉

  • 입력 1999년 4월 26일 19시 32분


▽조선시대 18품계의 관직 중 최하위 벼슬은 참봉(參奉)이었다. 종9품(從九品)에 해당하는 미관말직의 상징적 벼슬로 요즘은 역사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됐다. 그러나 관(官)의 위세가 절대적이었던 조선사회에서 최하위라지만 참봉은 당당한 벼슬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관기(官紀)가 문란해진 조선말기에 이르면 참봉은 돈주고 벼슬을 사려는 상민들이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관직이기도 했다.

▽참봉은 20여개 관아에 배치됐지만 왕릉 등을 관리하는 ‘능참봉’은 그 중에서도 하위직에 속했다. 벼슬을 사들여 양반행세를 하던 상민출신을 가리켜 ‘능참봉도 못한 주제에…’라고 비아냥댈 만큼 능참봉은 미관말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가 사적(史蹟)으로 지정한 왕릉이나 묘의 관리는 조선시대 능참봉이 하던 일과는 비교의 차원을 달리해야 할 만큼 중요한 업무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대통령시절 현충사관리를 1급(관리관)공무원이 맡아 과공(過恭)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요즘도 여전히 4급(서기관·중앙부처과장)공무원이 관리를 맡고 있다.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역시 과장급공무원이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두 사적에서 무속인 모자가 식칼과 쇠말뚝을 무수히 꽂는 황당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문화재 관리의 허점을 보는 것 같다.

▽관리소측은 몇명 안되는 인원으로 몰래 출입하는 것까지 막는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무인절도감지시스템 등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세워야 한다. 두 사적의 관리사무소가 문화관광부 예술진흥국의 지역문화예술과 감독아래 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문화재관리국으로 소속을 바꿔 전문적인 관리 감독을 받게 하는 조치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강구되기 바란다.

임연철〈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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