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한국의「왕따」 미국의「왕따」

  • 입력 1999년 4월 27일 19시 05분


청소년들에게 친구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들은 어른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를 본능적으로 안다. 오늘은 누구랑 등교할까. 도시락은 누구랑 먹을까. 누구랑 놀까.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마음에 상처를 입기 쉽다. 그들도 ‘사회적 존재’인 까닭이다. 소외감이 자칫 좌절감 증오심으로 커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교내폭력과 ‘왕따’문제는 바로 이런 데 뿌리가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벌어진 고교생 총기난사사건도 본질이 다르지 않다. 자살로 끝낸 범인 두명 중 한명의 유서가 그것을 입증한다. “나를 모욕하고, 친구로 받아주지 않으며,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깝다는 식으로 나를 대한 아이들은 죽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한미 양국 청소년문제의 성격적 차이도 발견된다. 우리의 ‘왕따’들은 아직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극적 탈출시도가 고작인 반면 미국에서는 ‘가해자’를 집단살해하는 공격적 보복의 단계에까지 와있다.

▽그러나 책임문제로 눈을 돌리면 우리도 외면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범인들이 히틀러 생일(4월20일)에 맞춰 범행했다고 나치즘만 탓할 수는 없다. 미국에서는 범인들의 부모까지 형사처벌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총기확보 등 자식들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채고도 왜 사전에 손을 쓰지 않았느냐는 사회적 추궁이다. 미국인들은 부모의 감독소홀(70%)을 최대 원인으로 꼽고 있다는 소식이다.

▽‘먼 산의 불’만은 아니다.개인의총기소지가금지된우리에게 ‘발등의 불’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부모들이 자녀를 ‘시한폭탄’으로 키우는 측면은 없는지. 자기 자식의 기(氣)살리기에만열중하는부모,아파트 평수가 작은 집 아이와 못놀게 하는 부모…. 생각해 볼 점이 너무 많지 않은가.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