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개헌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과 이총재의 최근 태도는 명쾌하지 못하다. 어딘지 반사적 이익이나 노리는 듯하고 당략적인 냄새가 풍긴다. 그것은 그것대로 분명히 문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명색이 여야 영수들이, 모처럼 우여곡절 끝에 만나서 나눈 얘기가, 그 중에서도 서로의 양해하에 공표하지 않았던 부분이, 한달 뒤의 여야 싸움과정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빗나간 정치의 일단이요, 정치에서의 ‘신의’를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3월의 여야 영수회담 직후 청와대와 한나라당측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 내용은 발표하지 않겠다’고 설명했었다. 논의내용을 놓고 양측이 필요에 의해 몇가지 합의사항을 국민 앞에 발표하고 나머지는 묻어두기로 한 것이다. 그바람에 여러 억측이 대두되자 양측이 진화에 나선 일도 있다. 말하자면 내각제 얘기도 그렇게 양측이 묻어두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런 것을 한 쪽의 필요에 의해, 정략적으로 터뜨린데 대해 우리는 실망을 금치 못한다.
우리는 이러한 ‘뒤’밝히기 공세가 과거처럼 ‘힘없는 야당’의 자구(自救)몸부림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집권 여당측에 의해 나온 점을 더욱 마음 무겁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청와대측은 이총재를 공격하는 전제로 이총재가 정책적 비판이라는 정도를 외면하고 속칭 ‘꼼수’로 공동여당을 교란,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사이를 이간(離間)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야당의 그런 노림수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명색이 정권을 쥐고 정국 주도권을 행사하는 집권여당의 신뢰를 등지는 ‘막후 공개’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당시 영수회담은 1년여 동안의 숱한 정치적 공방과 마찰 대립을 수습하고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주앉게 된 자리였다. 그런 자리의 영수들의 정치적 양해사항을 상대방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 공격의 빌미로 이용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비신사적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치파트너에 대한 상도(常道)도 아니고 여당의 금도(襟度)에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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