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이문재 「기념식수」

  • 입력 1999년 4월 28일 19시 36분


형수가 죽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감자를 구워 소풍을 간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개구리들은 땅의 얇은

천장을 열고 작년의 땅 위를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그사실을모르고있으므로

교외선 유리창에 좋아라고 매달려 있다

나무들이 가지마다 가장 넓은 나뭇잎을 준비하러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영혼은 온 몸을 떠나 모래내 하늘을

출렁이고 출렁거리고 그 맑은 영혼의 갈피

갈피에서 삼월의 햇빛은 굴러 떨어진다

아이들과 감자를 구워먹으며나는일부러

어린왕자의 이야기며 안델센의 추운 바다며

모래사막에 사는 들개의 한 살이를 말해 주었지만

너희들이 이 산자락 그 뿌리까지 뒤져본다 하여도

이 오후의 보물찾기는

또한 저문 강물을 건너야 하는 귀가길은

무슨 음악으로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가

형수가 죽었다

아이들은 너무 크다고 마다 했지만

나는 너희 엄마를 닮은 은수원사시나무 한 그루를

너희들이 노래부르며

파놓은 푸른 구덩이에 묻는다

교외선의 끝 철길은 햇빛

철철 흘러넘치는 구릉지대를 지나 노을로 이어지고

내 눈물 반대쪽으로

날개도 흔들지 않고 날아가는 것은

무한정 날아가고 있는 것은

―시집‘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민음사)에서―

초여름일까? 아직 엄마가 죽은 줄을 모르는 형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무를 심으로 가는 이는 제대병일 것 만 같다. 너무 젊은 여자란 처녀가 아니라 아이들을 아직 다 기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여자이리. 죽은 엄마를 기념하기 위해 심는 나무인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노래부르며 구덩이를 판다. 영혼이겠지. 날개도 흔들지 않고 무한정 날아가고 있는 저것은!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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