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제복 3년의 회환
하지만 도리없이 우리들은 ‘청춘의 부고장’처럼만 느껴지는 징집영장을 받아 들어야 했고, 수많은 송별파티를 거치면서 자포자기 상태로 입영열차에 올라타야만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낯설기만 하던 그 파랗게 깎은 머리들을 생각해보자. 소설로도 영화로도 유명했던 ‘바보들의 행진’의 한 장면처럼, 그 어떤 언약으로도 달래지지 않는 불안감에 처절하게 길고 긴 키스를 나누던 그 신새벽의 연인들을 떠올려 보자. 그렇다. 우리도 두려웠다. 그 3년의 세월이, 그 3년의 공백이…. 그 점을 인정하면서 사상 최대 규모라는 이번 병무비리를 바라보아야 한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물론 당사자인 젊은이들은 비난의 손가락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프로야구 선수이든 가수이든 강남의 고급 나이트클럽을 안방처럼 드나드는 오렌지족이든, 그런 자신들의 생활을 공백없이 이어가기 위해 스스로 비리의 주인공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일이다. 나란히 출발해야 할 마라톤에서 몇㎞쯤 앞서 달려보자는 계산속까지 끼어들었다면 더더욱 꾸지람을 들어야만 한다.그들의 못난 부모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들의 가장 큰 잘못은 언제나 해온 버릇대로 거액의 현금을 동원해 엄정해야 할 병무행정을 흐려놓았다는 점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 막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독립하기 직전의 나이에 있는 아들들에게 비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가장 아프게 반성해야만 한다. 옛날식 군대용어로 말하자면 이른바 ‘오시범(誤示範)’을 보여준 것인가? 당장은 물론 고맙겠지만 그런 부모를 과연 자식들이 두고두고 존경하겠는가를 생각해보면 그들의 투자는 허망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경우 부모와 자식이란 공범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타깃을 잘못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약해 빠진 젊은이들과 그들의 못난 부모들에게 눈을 흘기느라 정작 핵심을 놓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의 주범은 누구인가. 바로 군인이었다. 아무리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지만 이번 병무비리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주연까지 해낸 사람이 다름아닌 현역군인이었다는 점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된다. 그리고 실무자인 그 현역군인이 아무리 마당발에다 능수능란한 존재라고 해도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고 볼 때 이 나라의 병무행정 자체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나아가 군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병무행정에 큰 구멍
대부분의 청년들에게는 그토록 엄정하기만한 병무행정이 사실은 길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엄청난 뒷구멍을 숨겨두고 있었다면 화가 치밀다 못해 허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비리가 과연 한두 사람의 돌출행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누구라서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은 ‘사상 최대규모의 비리’가 아니라 ‘사상 최대규모의 수사’일 뿐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가? 앞으로 투명한 병무행정을 하겠다는 발표에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코웃음을 친다. 병무비리의 바이러스는 못난 부모 자식과 한두 사람의 원사 준위에게만이 아니라 군내부에 깊숙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리라는 것이 우리들 무력한 장삼이사들의 짐작이다. 이런 의혹과 불신을 분명하게 씻어내야 할 책임은 당연하게도 군 자체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묵묵히 군 복무를 치러내는 이유는, 그것이 이 땅에 태어난 우리들이 거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라고 믿기 때문이다. 거기에도 결코 떳떳지 못한 예외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하는 예비역 병장까지도 소리치고 싶어지곤 한다. 청춘을 돌려다오!
고원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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