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이라도 한집에 살면 불편하다’고 생각하던 주부가 외국인 민박을 시작한 것은 남편의 ‘강권’ 탓. 농협에 다니는 남편은 93년말 “쌀 수입개방에 따른 우리의 농업실정을 한 사람의 외국인에게라도 더 알리자”며 민박을 고집했던 것.
94년 봄 캐나다의 예비외교관 코즈노씨를 시작으로 노하우를 쌓아갔다. 김씨는 성의껏 대접했고 아들 성빈(휘문고 2년) 종빈(대명중 2년)이 거들었다. 짧은 영어실력이었지만 상대도 성의를 보여 의사소통은 문제가 안됐다. 한국관광공사를 통해 숙박비로 나오는 하루 2만원(현재 3만원)에는 아침식사비만 포함돼 있으나 점심이나 저녁도 ‘숟갈 하나 더 놓으면 된다’는 생각에서 함께 먹었다.
외국인 민박은 다른 나라의 제도나 문화를 직접 배우는 기회. 그러나 그들이 떠난 뒤에야 행동이나 사고방식에서 많이 배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방문예정시간보다 1시간 일찍 와 ‘실례’하지 않기 위해 아파트 경비실 옆 벤치에서 기다리던 미국인 변호사 다비드, 꼭 무릎을 구부리고 두 손으로 잔을 받으며 인사하는 일본인 호테….
그들과의 생활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목욕탕을 온통 물구덩이로 만들어 놓는가 하면 밤 11시에 들어와 밥 달라던 미국인 아가씨 크래웨트, 무더운 날씨에 외출도 안하면서 신발을 신고 거실에 들어오던 미국인 교수 포트나 부부….
“지난해 초 포트나교수의 아들이 찾아와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과 함께 유품을 전해 주었어요. ‘시카고 불스 농구팀’의 우승게임 녹화 비디오와 ‘To Sung―bin,Park’이라는 쪽지였어요. 성빈이 마이클 조던 선수를 좋아한다는 것을 잊지않고 경기를 녹화해 두었던 것이지요.”
가장 큰 수확은 아이들이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 민박시작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성빈은 영어실력이 부쩍부쩍 늘었다. 영어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됐다.
김씨는 이같은 추억을 모아 서툰 문체로 쓴 ‘안방에 모신 이방인들’(협동아카데미)을 최근 냈다. 주부들에게 ‘안방에서 세계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권하며.’
〈김진경기자〉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