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06)

  • 입력 1999년 5월 3일 19시 49분


뭐래?

좋은 일이 있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더라.

새로운 사람들이라니….

글쎄 그렇게만 썼으니 내가 어떻게 알겠어? 뭐 교포들이겠지.

책이란 또 뭐냐?

응, 나중에 읽어 봐라. 조직의 학습을 강화해야겠어.

동우는 내게 책이 든 서류 봉투를 주었다.

지금 모두 모이는 건 아직은 위험할텐데….

통신으로부터 시작하자. 건이네 요꼬 공장을 중심으로 각개 조가 받아 가도록 하면 될거야.

제작은?

내가 첫 달을 수행하고 다음 달은 네가 맡아라. 이제 연말연시가 지나고 내년 봄이 되면 이 자들은 새 정부를 구성할 거야.

최동우가 말을 끊고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자. 저기 웬 사람이 오구 있어.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그림자가 성당 벽의 모퉁이를 돌아서 걸어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우리는 반대편으로 걸어 나갔다. 나가자마자 큰 길이 나왔다. 내가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 들어왔던 길이었다. 행인들이 지나 다니는 보도에 나서서 뒤를 돌아보니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동우가 속삭였다.

미행을 조심해야지. 일단 길을 건너자.

우리는 횡단보도 근처로 가서 신호가 바뀔 때까지 상점의 유리창을 들여다보며 기다렸다. 파란 불이 켜지는 게 유리창을 통해서 보였고 우리는 사람들 틈에 섞여 길을 건넜다. 길을 건너자마자 몇 발짝 앞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둘이는 약속한 것처럼 그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 안에 들어서자 뛰기 시작했다. 역시 뒤에서 사람이 뛰어오는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골목 안이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어 사람쯤 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두 갈래로 갈라진 골목 길에서 보다 가까운 곳에 다른 쪽으로 나가는 보도가 보이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저쪽으로!

동우가 뛰어 나가면서 나직하게 부르짖었다.

나가자마자 길을 건너자.

나도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우리는 불빛이 훤한 도심지로 나서는 중이었다. 동우와 나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는 차도로 뛰어 나갔다.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고 피해 가며 법석을 떨었지만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길을 건너 다시 다른 샛길을 찾아 뛰었다. 두리번거리던 나는 모퉁이에 보이는 찻집을 발견했다. 오래된 일본식의 이층 집이었다. 내가 계단으로 오르자 동우도 머뭇거리지 않고 뒤를 따랐다. 찻집은 제법 넓었는데 손님은 두 테이블밖에 없었다. 우선 집 뒤편의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 다가가 퇴로를 보아두고 나서 길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십일월의 제법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목과 가슴에 땀이 흘러 내렸다.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창으로 아래편 길을 주시하고 있었다. 레지가 하품을 하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어요?

네, 커피 둘.

동우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고 나서 다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미행이었어.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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