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죠? 남들은 공부하고싶어도 돈이 없어서 국민학교두 못 마치구 일하러 서울로 오는데.
댁에 부모님들이나 순옥씨하구 친구들은 열심히 일하는데두 왜 못 살죠?
그야… 가난해서 그렇지요.
왜 가난한가요?
첨부터 가진 게 없었으니까요.
열심히 일하면 어떻게든 저축도 하고 밑천이 생겨야 하잖아요?
배우지 못했으니까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없으니 그렇잖아요.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어두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지 않겠습니까?
순옥은 말문이 막힌 듯 잠깐 침묵했다.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순옥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예요.
나도 그네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기로 마음 먹고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
나 오늘 통금 해제까지만 여기 있어두 될까요?
순옥이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경자는 낼 아침에 들어오고 아마 명순이는 박 씨 오빠 방에서 자구 올 거예요.
고맙습니다. 헌데 또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이따가 열 두 시 쯤에 아래 내려가서 박 형을 좀 불러다 줄래요?
여기루요?
아뇨, 저 위에 철봉대 있는 빈터쪽에요.
그러죠. 근데 괜찮겠어요?
그네는 걱정스럽게 물었는데 나는 성당 부근에서 숨가뿐 상황을 겪고 나서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사실은 줄곧 그 생각을 해왔던 거였다. 저들은 나를 선택할 것이다. 내가 믿으면 그들도 나를 저버리지 않으리라. 나는 나 자신을 점검하러 온 셈이었다. 순옥이가 일어났다.
저녁 안 드셨지요?
뭐, 괜찮아요.
우리 밤참으루 라면 많이 사다 놨어요. 얼른 끓여 올게요.
순옥이가 지핀 석유 곤로의 끄으름 냄새가 방안에 가득찼다. 나는 방 창문을 열었다. 열면서 내다보니 반달이 희부염하게 걸려 있었다.
통금이 시작 되는 열 두 시에 순옥이를 아래로 보내고 나는 언덕 맨 위의 바위가 있는 빈터로 올라갔다. 산 동네 사람들이 바쁜 일상에서도 아침마다 올라와 맨손 체조나 야호 소리를 내지르는 노천 체육관인 셈이었다. 한 가지 흠은 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잡초와 연탄재 무더기만 있어서 좀 삭막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빈터의 가운데에서 기다리지 않고 박이 올라올 언덕의 반대편에 있는 담 모퉁이에 기대어 그를 기다렸다. 거뭇한 사람 모습이 골목 사이로 나타났다. 좀 비틀거리는 걸 보니 취한 모양이었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빈터 주위를 둘러보고 바위가 있는 데로 걸어 올라와 털썩 주저앉았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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