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종근지사는 公人이다

  • 입력 1999년 5월 8일 19시 56분


고관집 절도혐의로 구속기소된 김강룡피고인의 변호인단이 유종근(柳鍾根)전북지사의 서울 목동관사를 대상으로 증거보전을 신청하고, 이곳에 대한 현장검증과 범행 재연(再演)을 담당재판부에 요청했다. 유지사와 절도범이 진술하는 피해금품과 절도액수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양측 진술의 진위를 가리는 데 필요한 절차라는 것이 변호인측의 주장이다.

물론 변호인단이 이 절도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어떤 반사적 이익을 기대하는 듯한, 이른바 ‘정치공세’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유지사가 고위 공직자로서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의혹에 대해 깨끗하고 분명하게 소명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이런 공세의 구실을 내준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공직의 도덕적 책임은 바로 그 당사자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이유로 국민적 의혹을 얼버무리고 덮어둘 수 없는 데 있다.

현장검증 불응 이유로 유지사는 “세번이나 경찰과 검찰이 현장을 다녀갔고, 범인이 검증과정에서 엉뚱한 데를 짚기라도 하면 또 의혹이 일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절차에 따른 정식 현장검증은 한 바 없다고 했다. 그 때문에 국민은 유지사가 목동관사를 떳떳하게 공개하지 않고 집기 등을 심야에 치워버린 데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는 의혹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정치인 고위공직자를 둘러싼 사회적 의혹들이 흐지부지 넘어가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아왔다.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일은 적어도 구정권과 다르다고 자부하는 ‘국민의 정부’ 시대에는 없어야 한다. 유지사를 포함해 누구라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트집거리가 없을 정도로 명징(明澄)하게 처신해야 하며, 나아가 의혹사건에 직면한 경우는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유지사는 대통령으로부터 신임받아온 측근 중의 측근임을 부인할 수 없으며 실제로 나라 안팎에서 대통령 경제고문역할을 수행 해왔다.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각광받은 상징적 인물군(群)에 속한다. 그렇다면 유지사는 관사 내부를 원상회복시켜 현장검증에 응함으로써 결백을 입증하는 것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도리요, 공인으로서의 의무라고 할 것이다. 아울러 전북도 예산으로 전세낸 관사를 사적으로 이용해온 경우는 없는지, 현금 3천5백만원의 조성 및 보관경위, 12만달러를 둘러싸고 야당이 제기한 새로운 의문 등도 유지사와 검찰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실대로 밝히고 국민을 납득시키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는 유지사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조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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