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11)

  • 입력 1999년 5월 9일 19시 51분


오 형아, 자네가 이해해라. 요새 말야 볼온분자 신고하면 쌀 배급을 주거든.

얼마나 주는데….

한 세 말쯤 줄거야.

나는 다시 눈시울이 확 뜨거워졌다.

됐지 뭐, 쌀 서 말이면 한 식구 살만하겠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처음에 느꼈던 무력감은 지워지질 않았다. 박과 나는 다시 순옥이네 방으로 돌아갔고 그네는 부엌 불까지 꺼둔채 방안에 펴놓았던 이불도 깨끗이 개어 두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박이 따라 들어오려고하자 나는 문지방을 막고 서서 그에게 말했다.

여기서 헤어지지. 나는 통금해제되면 떠날 거야.

아니 괜찮다니까.

나는 박에게 손을 내밀었다.

방으로 돌아가. 벌집 식구 중에 누군가 살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박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았다.

잘 가시오. 미안하게 됐어.

우리는 악수를 했다. 박이 부엌 문을 밀고 사라졌고 나는 순옥이와 조금 떨어진 방문 앞에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순옥이가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베개를 내주면서 말했다.

네 시 되려면 아직두 많이 남았는데 거기 누워서 눈 좀 붙이세요.

누우면 못 일어나요. 차라리 앉아서 새우고 가는 게 나아요.

순옥이는 다시 베개를 이불 위에 얹었다.

오빠 말마따나 이해를 하세요. 여기 사는 이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확인하고 믿고 싶어했던 것은 교과서의 계급이 아니었다. 나와 더불어 코 골고 잠들고 허드레 음식에 감지덕지 하고 술 주정을 주고 받았으며 함께 히히덕거렸던 나의 이웃이 나를 저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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