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옥이는 주춤 서더니 고무신 끝으로 보도를 건드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차비… 있어요?
나는 웃어 보이며 점퍼의 가슴께를 두드려 보였다.
나 돈 많아요. 자 그럼….
하, 그런데 길을 건너기 전에 순옥이가 내 등 뒤에다 대고 조금 커진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고생스러우면 자수해요.
나는 그냥 못들은체 하고 뛰어서 길을 건넜다. 마침 달려나오는 버스를 향해서 손을 들고 얼른 올라탔다. 버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좌석에 앉으며 흘낏 돌아보니 저쪽 모퉁이에 서있는 그네의 빨강 쉐터가 보였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차가 오른쪽으로 돌아가자마자 모습이 사라졌다.
나중에 감옥에 들어가서도 나는 오래동안 그들을 기억했다. 사실 나는 서울에서 흘러 다니던 위급한 순간들은 거의 잊어 버렸고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게는 갈뫼에서의 꿈결 같은 몇 달이 전부였으며 간혹 지옥 같은 벌집에서의 한 달이 뇌리에 깊이 남아 있었다. 지옥 같았을지언정 거기서 만났던 젊은 노동자 몇 사람에 대한 신뢰의 확인은 내가 수 십년간 옥살이를 하면서도 스스로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던 중요한 힘이 되었다. 그들은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억척스런 명순이와 싱겁고 사람 좋은 박은 소원대로 월셋방을 얻어 결혼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순옥이는 소원대로 대전에 내려가 간판이 예쁜 양장점을 내어 돈도 벌고 동생들도 공부 시키고 늦결혼이지만 시집 가서 아들 딸을 낳았을까. 그리고 또 학생 시절에 야학에서 만났던 겁 많고 배고팠던 어린 여공들은 지금 어느 세상에서 엄마가 되어 있을지.
수배망이 훨씬 촘촘해져서 최동우와 나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조직은 나를 당분간 가까운 곳에서 관리하려던 계획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건이가 내게 그 사실을 통고했을 때 나는 순순히 받아 들였다. 나는 가끔 건이가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통신문으로만 연결 되었고 대학가 부근의 중산층 동네에서 연말까지 하숙을 했다.
첫눈이 내린 어느 날 저녁에 나는 여고생들로 가득찬 선물가게 앞을 지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연말에 어울릴듯한 카드 몇 장을 샀다. 어릴적 생각이 나서 양과자점에 들어가 구석 자리에 앉아 크림빵과 곰보빵이며 우유 한 잔을 시켜 놓고 카드에 깨알처럼 몇 자씩 적어 나갔다.
어머니, 벌써 흰 눈이 내리는 연말이 되었습니다. 저는 별 탈이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마십시오. 그리고 누가 찾아와 뭐라고 하더라도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어머니께서는 이 아들의 뜻을 잘 이해하고 계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어느 명작에서 보니까 저와 같은 경우를 당한 아들 때문에 삐라를 뿌리다 잡혀가신 그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정치는 잘 모릅니다. 나는 그래서 아들이 하는 일을 한사코 말렸지요. 그런데도 그 아이는 나를 거역했습니다. 그는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지요. 나는 우리의 사랑 보다도 더 큰 어떤 것 때문에 아들이 나를 거역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들의 일을 하기로 했지요.’
<글: 황석영>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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