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누구여? 현우 형, 무사했구만요.
그래 별 일 없냐?
내가 마루에 들어서자 최의 아내가 얼른 커튼부터 쳤다. 그와 마주 앉자마자 최는 대번에 눈시울이 벌겋게 되더니 소매를 들어 얼른 닦았다.
서울서 내려오시는 길이오?
응 그래, 남은 사람들은 다들 잘있지?
남은 사람들이 어딨소. 모두 죽고 때들어가불고 직장 떨려나고 사는 게 아니어라우. 서로 만나면 인자 미안해서 인사도 못하지라. 슬슬 피하지요.
뭐가 미안해….
살아 남은 거이 추접지라. 서울 간 광주 아그들 다들 잘 있습디여?
잘 있을 거야.
들으니께 시방 간첩 사건들을 무더기로 엮어내는 모양입디다.
뻔하겠지. 남미에서도 항쟁을 빨갱이 폭도로 몰았으니까.
우리보러 글로 가라고 몰아내는 폭이지라. 나도 명색이 예수쟁인디.
미국 반대하면 빨갱이라구.
마침 점심 상을 보던 중이었던지 그의 아내가 잘 차린 밥상을 겸상으로 들여왔다. 갓 나온 상추와 쑥갓의 초록이 싱싱하다.
형님 기운 낼라먼 고기를 자셔야 쓸것인디 풀 밖엔 없어라우.
고기는 서울서 매일 먹는다.
시외의 북쪽 야산에서 구덩이를 파고 암장했던 시체가 몇 구 발견 되었다는둥, 시 청소부가 청소차에 실어온 시체들을 공원부지의 연못에 쓸어 넣는 걸 목격했다는둥, 무등산 산록의 취수원이 되는 저수지에 시체를 던져서 독한 소독약을 풀었다느니, 그래서 시민들이 여름내 수돗물을 못먹었다는 얘기를 최와 그의 아내가 격앙된 어조로 말한다. 그들은 아직도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 거리에 나서면 서로 공범자처럼 간직한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눈길이 마주치면 서로 피해 가면서.
너 한 이틀 시간 있냐?
내가 묻자 그는 내 물음이 그냥 소리가 아님을 대번에 알고 긴장하면서 말했다.
오늘이 목요일이고 토요일까지는 개안아라우.
그럼 됐다. 너 나하구 오늘 밤 차루 서울 올라가자.
서울서 오시는 길이람서?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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