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죽음」부른 캠퍼스의 술

  • 입력 1999년 5월 19일 19시 21분


한순간 재미삼아 벌였던 장난치고는 너무도 엄청난 결과를 빚고 말았다. 어제 서울대 봄철 대학축제에서 발생한 서울대생 2명의 익사사건이 그것이다.

같은 동아리 소속 학생들이 함께 술을 마신 뒤 신임 회장의 당선을 축하하는 전통의식으로 해당 학생을 강제로 교내 연못에 빠뜨린 게 화근이었다.

이 사고로 수영을 못하는 회장과 구조를 위해 물에 뛰어든 학생 한명까지 희생되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학생들도 안됐지만 이들을 애지중지 키워 명문대에 진학시킨 부모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사고를 단순히 돌발사고로만 볼 수는 없다. 어느 특정인을 곤경에 빠뜨려 놓고 쾌감을 느끼는 캠퍼스 놀이문화의 가학적이고 퇴폐적인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술과도 무관하지 않은 사고다.

경찰 조사 결과 동아리 회원들은 이날 상당량의 술을 나눠 마신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크게 보아 대학가의 왜곡된 음주문화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사고다. 건전한 정서와 올바른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라면 도저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더구나 대학은 대표적인 지성인 사회가 아닌가. 우리 대학사회의 어딘가가 정상궤도를 벗어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학가의 음주문화는 전부터 문제가 되어왔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못하는 학생에게 강제로 많은 술을 먹여 목숨을 잃게 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대낮에 캠퍼스 한 복판에서 술판을 벌이는 광경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고된 입시준비 과정을 거쳐 대학에 들어와 모처럼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고 싶은 대학생들의 기분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대학이 기본적으로 술마시고 노는 곳이 아니라는 점에서 요즘 학생들의 음주관행은 상식선을 한참 벗어나 있다. 따라서 이번과 같은 사고의 재발 위험성이 대학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학문화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요즘 대학에는 먹고 마시는 소비적 문화만 존재하지, 진정한 대학문화는 없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 진지한 토론이나 비판의식은 점차 흐려지고 10대 문화를 연상케 하는 감각적이고 퇴폐적인 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학사회는 대학문화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는 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학가 음주문화는 성인사회로부터 영향받은 측면도 크다.

1인당 술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른바 ‘폭탄주’같은 것을 억지로 마시게 하는 음주방법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사회 전체의 음주문화와 놀이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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