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비서진의「개각 예고」

  • 입력 1999년 5월 20일 19시 23분


청와대에서 이례적으로 나온 개각 ‘예고’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어느 장관은 업무 수행 능력이 어떠했느니 하는 등 개각 대상 인물마저 구체적으로 언론에 거론된다. 누구는 이미 장관직을 떠나는 것으로 알고 짐을 챙긴다는 얘기도 들린다. 개각 얘기가 나오면 관가가 설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처럼 청와대측이 개각계획을 미리 밝히고 그것도 대폭 소폭하며 엇갈린 얘기를 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이때문에 그 파장도 더 확대된 것 같다.

사실, 지금은 정부조직개편으로 4명의 신설 장차관에 대한 인사를 해야 하고 내년 총선을 생각한다면 의원 겸직 장관들의 거취도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개각 시기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전후가 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처럼 개각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상태에 불을 붙인 것이 바로 김중권(金重權)청와대비서실장의 18일 발언이다. 김실장은 기자들에게 “국회의원 출마할 사람은 지금쯤 정리해야지” “정치인 출신이 국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이 정해지면 폭이 넓어지지 않겠나”라고 했다. 현내각에 정치인출신 장관이 8명인 사실을 감안하면 김실장의 말은 바로 대폭 개각설로 연결된다.

그러나 뒤이은 박지원(朴智元)대변인과 김정길(金正吉)정무수석의 말은 다르다. 김대변인은 김실장의 발언으로 대폭개각설이 보도된 지 하루만인 19일 “개각의 시기와 폭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정무수석도 ‘대폭개각’에 의문을 표시했다고 한다. 김대통령이 대폭개각설의 진원지인 김실장을 질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개각문제를 청와대 비서실에서 이사람 저사람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같은 청와대 비서진의 엇갈린 발언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집단은 공직사회다. 개각대상으로 거론되는 장관의 업무능력과 고위층의 평가가 설왕설래한다면 그 부처가 제대로 굴러갈리 없다. 더구나 일부 보도처럼 내부 승진에다 개혁적인 인물이 등용될 것이라고 한다면 인사 가능성이 있는 공직자들은 더욱 위만 쳐다볼 것이 뻔하다.

다른 공직자들도 마찬가지다. 공직사회가 정부조직개편으로 크게 동요하고 있는 마당에 개각설까지 분분하다면 그들이 어떻게 자기업무에 몰두할 수 있겠는가.

일부에서는 사전 여론 검증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각설을 꺼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정확한 여론 검증을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검증대상을 내놓고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애매하게 대폭이니 소폭이니 하다가 그 부작용만 커졌다. 가능하면 개각의 시기를 앞당기는 것도 불필요한 잡음을 없애고 공직사회를 안정시키는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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