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러고도 「民주도」라니

  • 입력 1999년 5월 21일 19시 28분


제2건국운동의 관(官)주도적 성격이 정부 공식문서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우리는 이 운동이 정부의 말과는 달리 결국 관주도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거듭 지적하고 경계해 왔다. 그런데 행정자치부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것으로 21일 확인된 ‘제2건국운동 활성화지침’은 지자체 청사내 사무실 확보에서부터 파견공무원의 인사우대, 중앙 및 지방정부의 재정지원, 깃발게양에 이르기까지 전반적 사항이 관주도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고도 정부는 민(民)주도라고 계속 강변할 것인가.

국민의식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 대해 이론(異論)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관주도의 제2건국운동을 비판해온 것은 ‘제2건국’의 개념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그런 식의 캠페인이 국민의식 변화를 가져올 수 없으며 정치적 부작용의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였다. 정치권이나 정부가 먼저 변하지 않은 채 국민에게 변화를 요구하면 냉소와 불신만 키울 뿐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 운동은 내년 총선과 장기집권을 노린 현정권의 포석이라는 지적에 여론의 무게가 실리는 형편이다. 제2건국위가 대통령 자문기구라고 하면서 시군구 단위까지 전국조직화한 것은 그런 의도라는 것이다.

정부는 지침내용이 ‘권장사항일뿐 강제사항이 아니다’고 변명하고 있으나 이 말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다. 어느 지자체가 이를 권장사항으로만 받아들이겠는가. 이 운동이 관주도라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3월 사무국격인 기획단 상층부를 장차관급에서 민간인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이번 행자부 지침으로 볼 때 이것도 결국 눈속임이 아니었느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방별 제2건국위 추진반에 우수공무원 우선 배치 및 인사우대, 과장급 이상은 강사요원이라는 인식 요구, 1주년때 실적평가 및 포상계획 등은 제2건국위 활동을 행정기관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선거직인 지방의회 의원들도 관련 조직에 끌어들여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높인 지자체도 적지 않다고 한다.

문제의 지침이 21일 일제히 보도되고 논란이 재개되자 박지원(朴智元)청와대대변인은 “그 지침은 당연한 것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행정기관의 과잉충성에서 빚어지는 부작용이 있다면 시정토록 하겠다는 정도의 말도 없었다. 그의 말은 언론에서 지적한 숱한 문제점은 무시한 채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그의 태도에는 현정권의 오만이 묻어 있는 것 같다. 제2건국운동의 단추 몇개를 잘못 끼웠다면 지금이라도 푸는 게 현명한 일이다. 빗나간 궤도에 계속 집착하면 그 부작용이 현정권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며 국민에게도 큰 부담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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