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경준/떳떳지못한 금감위

  • 입력 1999년 5월 23일 19시 59분


삼성자동차 빅딜과 관련해 이건희(李健熙)삼성그룹회장의 사재 출연 문제를 놓고 정부와 재계간에 논란이 분분하다.

정부는 ‘그런 요구를 안했다’고 부인하고 재계에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며 정부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논란의 발단은 삼성과 대우간 자동차 빅딜이 막판 난관에 봉착하면서 이회장의 사재출연 문제가 교착의 주요 원인이란 얘기가 흘러나와 비롯됐다.

요지는 금융감독위원회 고위관계자가 삼성그룹에 이회장의 사재 5천억∼6천억원을 손실부담금 형식으로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는 것.

그러자 금감위의 실무국장은 물론 윤원배(尹源培)부위원장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 부인했다.

하지만 재계의 얘기는 다르다. 기업의 실무 임원들은 금감위는 사안이 껄끄러울 때마다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구두로 ‘지도’하는 게 상례라고 입을 모은다.

때문에 이번 이건희회장의 사재출연 논의도 공식부인과는 달리 금감위가 ‘뒷문’을 통해 종용했다고 보는 견해가 재계의 중론이다.

이헌재(李憲宰)금감위원장은 재벌 계열사 부실에 대한 총수의 책임을 강조할 때마다 민법에 나오는 ‘표현대리(表見代理)’라는 말을 거론해왔다.

말하자면 특정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금융기관은 기업 자체보다는 그룹이나 총수의 이름값을 믿기 때문에 이들이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 논리를 적용하면 금감위측이 ‘구두지도’라는 형식을 빌려 벌이고 있는 비공식적 재벌정책에 대한 책임도 결국엔 이헌재위원장이 져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 기회에 오너 총수의 경영책임을 공론화해서 그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분명히 해놓을 필요가 있다.

정경준<경제부>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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