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 2만6백원, 주민세 2천60원, 공무원연금 기여금 8만1천1백70원, 의료보험 3만3백원과 불우이웃돕기 성금 1만원을 공제하고 나니 그의 아내가 관리하는 통장에 들어온 실수령액은 64만7천2백70원에 불과했다.
30대 초반의 이 젊은 공무원은 김대중 정부의 수많은 개혁작업 가운데 하나를 맡은 부서에 속해 있는 탓으로 지난 해 7월부터 지금까지 밤 10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렇지 않아도 남편의 늦은 귀가와 계속되는 주말근무 때문에 아이 둘을 온전히 혼자서 키우느라 힘겨워하는 아내 앞에서 그는 ‘고개 숙인 가장’이 될 수밖에 없다. 기말수당도 정근수당도 해당사항이 없는 4월과 5월은 연간 본봉의 250%를 네 차례로 나누어 지급했던 체력단련비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없어진 탓에 그야말로 ‘공무원들의 보릿고개’가 돼버렸다.
위로 가나 아래로 가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임용 11년째인 어느 서기관을 보면 봉급 1백6만9천9백원에 가족수당 4만5천원과 장기근속수당 6만원, 관리수당 10만6천9백90원이 붙어 5월 보수액은 1백28만1천8백90원이다. 세금과 보험료 등을 떼고 난 실수령액은 1백8만6천4백30원이다.
사실상 공무원에 속하는 40만 교사들의 급여는 같은 근무경력을 가진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보다 좀더 처지는 수준이고 행시 출신에 비해 급여가 현저히 떨어지는 6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급여체계는 획일적이지만 이 ‘현대판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고통은 사람마다 다르다.
기본재산이 좀 있거나 맞벌이를 하는 공무원은 그나마 낫다.
어렵사리 마련한 주택의 융자금을 갚아야 하거나, 남자 혼자 버는데 아이들이 대학에라도 들어가거나, 부양해야 할 부모가 있거나, 부부 가운데 한 쪽이 실직을 하거나, 형제자매나 친구의 빚보증 책임을 덮어쓴 경우에는 사태가 정말로 심각하다.
이른바 ‘고통분담의 시대’였던 지난 1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출을 줄이면서, 그래도 모자라면 적금을 깨고 보험을 해약하면서 근근이 버텨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제 이 ‘보릿고개’를 금년으로 마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필요하다.
공직사회의 개혁은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만 급여의 삭감이 개혁의 내용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만약 정부가 계획대로 공무원을 1만4천여명이나 감축한다면 급여를 최소한 IMF 이전 수준으로라도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고관집 절도사건’에서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것처럼 고위공직자들의 위선과 도덕불감증이 여전히 판치는 가운데 일선 공무원들에게만 중단없는 고통분담을 강제하면 최근 관가(官街)를 떠도는 ‘괴문서’의 끔찍한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장관 도지사 국회의원은 집안에 돈을 쌓아두고, 부인은 과소비로 달래주고, 귀여운 자식은 군대 안보내는데, 우리더러는 왜 월급만 갖고 살라고 합니까. 우리 말단 공무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받을 겁니다.”
유시민〈시사평론가〉smrhyu@ms.kr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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