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영화계와 「젊은 피」

  • 입력 1999년 5월 25일 19시 30분


영화계에 ‘젊은 피’들이 모여들고 있다. 영화 전공자가 아닌 명문대 졸업생들이 맨손으로 영화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고 장기계획을 세워 외국으로 영화공부를 하러 떠나는 유학파도 상당수다. 직업인으로서 영화에 몸을 담는 일이 그리 쉬운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어릴 적부터 영상매체에 익숙한 세대인지라 영화의 길을 선택하는 데 별 주저함이 없다. 이들에게 영화계는 영상산업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보아 ‘약속의 땅’일지도 모른다.

▽엊그제 폐막된 제5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단편경쟁 부문)을 수상한 송일곤(宋一坤)씨는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에 재학중인 28세의 유학생이다. 이번 낭보에 대해 한국영화 최초의 칸 영화제 수상이라는 점보다는 겁없는 신인이 단숨에 최고 권위의 상을 차지한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아직 ‘감독’이라는 명칭을 붙이기가 망설여질 정도로 신세대인 그는 우리 영화계의 ‘젊은 피’를 실감케 하는 유망주임에 틀림없다.

▽칸 영화제의 역대 수상기록을 보면 한국은 다른 아시아국가에 비해 뒤진 느낌이다. 일본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 등 세 작품이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중국도 93년 첸카이거 감독이 ‘패왕별희’로 역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번에 송일곤씨가 수상한 단편경쟁 부문은 짧은 실험영화만 참가하는 분야로 우리는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디딘 단계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의 잠재 능력은 높이 인정할 만하다. 이번 영화제에서 단편경쟁 부문 참가작 10편가운데3편이우리 신인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송씨의 수상작 ‘소풍’은 IMF체제 이후 한 실직가장의 동반자살사건을다룬작품으로작가정신도 투철해 보인다. 신인들의 도전정신이 꽃피울 수 있도록 국내 영상산업의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는 것이 기성세대에 맡겨진 임무가 아닐까.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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