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안석교/하이에크 시장주의와 관치경제

  • 입력 1999년 5월 27일 11시 07분


금세기 최대의 자유주의 사상가로 꼽히는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하다. 체제전환 과정에 있는 동유럽권 국가와 경제위기로부터 탈출을 모색하는 남미 및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은 그의 신자유주의 시장원리를 배경으로 한다. 경제개혁을 진행 중인 한국에 하이에크 사상이 주는 시사점과 한계는 무엇인가.

하이에크에 따르면 정부의 시장 개입은 세가지 유형의 ‘타락 현상’을 유발한다. 도덕적으로 정부 의존적 사고를 확대시킴으로써 책임의식의 약화, 즉 도덕적 해이 현상을 조장한다. 정치적으로는 민간부문의 자율영역이 축소돼 결국 시민사회는 ‘예종의 길’을 밟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는 성장 잠재력의 배양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정부의 기능이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불편’을 덜어주는 정도에 국한돼야 한다는 오스트리아 출신 사회사상가 칼 포퍼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개혁 이후 새로운 관치경제의 위험에 처한 한국으로서도 이같이 극히 절제된 국가관을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행위규범과 관련해 하이에크가 가장 강조한 것은 법치문화였다. 민주사회가 요구하는 법체제의 마련과 이를 준수하는 문화적 토양 없이 시장경제는 작동할 수 없다. 하이에크를 포함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특히 재산권에 대한 보호장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유재산에 대한 소유권 사용권 및 처분권의 보장이 그것이다.

사회적으로 법질서가 정립되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시행비용’이 발생하거나 하이에크가 말하는 자생적 시장질서가 생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법치보다 인치를 중시하고 가부장적 문화전통이 강한 아시아적 가치와 그러한 시장가치간의 괴리현상을 단기간에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동안 여러 국가에서 반복된 개혁에도 불구하고 자유시장경제가 뿌리내리지 못한 원인도 자유시장경제의 ‘문화적 제약’에 기인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수용하기 위해 전통적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도 명쾌한 결론을 얻기가 쉽지 않다.

하이에크의 사상에서 분배의 공정성과 같은 사회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이라는 제도는 국가가 의도적으로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생적 ‘교환 성향’의 소산이기 때문에 모든 시장행위의 득과 실은 오로지 당사자의 몫일 뿐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나타난 중산층의 몰락과 한계집단의 확산 및 대량실업은 국가에 의한 사회안전망의 형성을 요구하는 사안이다.

이웃에 대한 정감은 ‘전령(傳令)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소규모 전통사회의 잔재라는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친화력 있는 공동체 사회의 실현은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정서일 것이며 이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실현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안석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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