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호청을 모두 뜯고 베갯잇도 벗기고 당신과 내 속옷들이며 방석 덮개까지 총동원해서 큰 함지에 담고 나무 빨래 방망이와 빨래판에 시커멓고 무르게 생겼지만 때가 잘 지는 빨랫비누 두어 개 넣고 내가 머리에 이고 나섰어요. 당신은 배낭에다 우리 점심 도시락과 풍로에 번개탄이며 숯까지 넣었구요, 그리고 한 손에는 아랫집에서 빌린 빨래 삶는 큰 양은 들통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접어 넣은 낚싯대며 지렁이 갑이며 고기망을 넣은 낚시가방을 들고 내 뒤를 따라 왔구요.
우리는 갈뫼의 과수원 아랫길로 가지 않고 반대편으로 올라 고개를 넘어갔어요. 그쪽은 읍내 쪽으로 흘러 내려가는 훨씬 너른 개천의 상류여서 양쪽 기슭에는 모래며 자갈밭도 있었지요. 물길이 휘돌아들어 흐름이 늦춰지는 제법 너른 소도 몇 군데 있었는데 큰길이나 마을에서는 제법 떨어져 있어서 물을 퉁탕대며 멱을 감는 아이들도 없었고 물을 대려고 법석을 떠는 농부들도 없었어요. 역시 근년에는 거기 시멘트로 물막이 보를 쌓고 수영장을 만들었지만요. 하여튼 그곳이 호젓하고 물 맑은 데라는 건 내가 출근하고 집을 비운 낮 동안에 인근 사방으로 산책을 다니던 당신이 먼저 발견했었지요.
모래밭을 내려가면 더 아래쪽 자갈밭 가녘의 물가에는 누가 갖다 놓았는지 서너 사람이 두 발을 딛고 쪼그려 앉을 만한 바윗돌이 거북처럼 등을 내놓고 잠겨 있었죠. 내가 함지를 그 부근에 내려놓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 앉으면 당신은 가져온 물건들을 자갈 위에 정돈해 두고나서 낚시 가방을 들고 수영 팬티 차림이 되어 웅덩이를 건너갔어요. 발목에서부터 무릎을 지나 배 위에까지 물이 차오르는 곳에 이를 때 쯤에는 내가 냅다 고함을 질렀지요.
깊은 데 들어가지 말아요. 수영할 줄 알아요?
그런데두 당신은 못들은 척 하고 물이 가슴에 차오르도록 슬슬 걸어 들어가는 거 있죠.
어어 저 이가 정말….
내가 안달이 나서 벌떡 일어서면 당신은 물 속으로 쑤욱 들어가 버려요. 물 위에는 반쯤 잠긴 비닐 가방만 띄워 놓고선. 나는 설마 하면서도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벅지가 물에 잠기는 데까지 걸어 들어가며 다시 소리를 지르지요.
장난하지 말아요. 얼른 안 나와?
그러고서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당신의 머리가 쑤욱 올라와요. 그리곤 상체를 벌떡 일으키는데 애걔걔 겨우 배꼽에 찰만큼의 깊이잖아.
당신은 내가 자리잡은 빨래터의 건너편에 멀찍이 떨어져서 자리를 잡고 낚시질을 시작하고 나는 드디어 함지에서 빨래거리를 꺼내어 물에 한 가지씩 헹구기 시작합니다. 우선 작은 것들부터 헹구고 비누질하고 빨래판에다 벅벅 문지르고나서 이불 호청 같은 큰 빨래는 맨 나중에 절반으로 접어 물속에 잠그고 몇번이나 휘휘 저으며 헹구지요. 한 부분씩 척척 접어가며 비누칠을 해서는 빨랫방망이로 힘차게 두들기면 주변 들판과 골짜기에 경쾌한 소리가 메아리치는 거예요.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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