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윤수/지금은 샴페인 터뜨릴때 아니다

  • 입력 1999년 5월 27일 19시 25분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고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고 만취했다가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부도로 말미암아 수많은 기업이 쓰러지고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이 길거리로 쫓겨나와 노숙자가 됐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혹독한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을 수행하고 장롱에 깊이 간직한 아이 돌반지까지 꺼내 6·25 이후의 최대 국난이라는 외환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다. 그 결과 국제사회로부터 한국이 기적같은 일을 해 내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경제시스템 아직 허약

올해 들어 4% 이상의 성장률이 기대되며 외환위기의 근인(近因)이었던 외환보유고도 5백억달러를 훨씬 넘어섰다.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한국이 멀지 않아 구제금융이 필요없게 될 것이라고 말해 IMF 졸업이 생각보다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분위기다.

최근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장기침체에 빠졌던 증권시장이 활활 타올라 거품에 의한 과열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을 정도이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면 ‘아이구 큰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기 시작한다. 경제의 생산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바닷가재 골프용품 대리석 샹들리에 등 고급 사치재 수입이 급증했다. 소득 감소에도 불구하고 도시근로자의 평균소비성향(소비지출을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비율)이 IMF 관리체제 전인 96년의 그것을 앞질러가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한 대규모 사업 교환(빅딜)이 지지부진하고 64조원의 금융구조조정 자금이 부족해 10조원 정도의 추가 투입이 필요한 실정이다. 더욱이 실업률은 여전히 7%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추가 구조조정과정에서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비록 외환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조금 걱정스럽다. 상당 부분 우리가 열심히 일해 벌어들인 것도 있으나 대부분 추가 차입이나 기업 자산을 외국에 매각해 조달한 자금이다. 앞으로 이자를 꼬박꼬박 지급해야 하거나 우리 기업이 벌어들일 성과의 일정 부분을 미래에 가져가는 대가로 교환한 자금이다.

이를 개인의 살림살이로 비유해 보자. 부채에 쪼들리다 못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나 기타 자산을 처분해 일시적으로 여유로운 자금을 확보했다고 하자. 이를 잘 활용해 다시 집을 되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일단 쓸 수 있는 돈이 생겼다고 해서 어려웠을 때 기억을 잊고 흥청망청 써버린다면 그를 뭐라 불러야 할 것인가.

◇허리띠 계속 졸라매야

소득이 한국의 2,3배가 넘는 서유럽 국가인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에 가보면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보다 훨씬 작은 차들이 좁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한국보다 잘 산다는 나라의 사람들도 그러하거늘 여전히 IMF의 지도를 받고 있는 나라의 국민이 외화로 수입한 고급 대형차를 타고 사치재를 쓰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의 경제시스템은 세계경제의 국제화에 따라 외부 충격에 취약하기 그지없다. 미국 경제의 급속한 냉각과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및 개도국의 잠재적 채무불이행에 따른 국제금융시장의 경색 등이 취약한 경제시스템을 강타할 수 있다.현재 정부의 부양책에 의존해 일시적 성장세를 보이는 한국 경제는 날개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다시 추락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지금 다시 샴페인을 터뜨리겠다는 말인가. 이것은 달콤한 샴페인이 아니라 독약이 될 수 있다.

알코올에 병이 난 사람이 치료를 받고 일시적으로 몸이 좋아졌다고 해서 다시 술을 입에 대 병이 재발하면 병을 고치기가 처음보다 훨씬 어렵고 잘못되면 구제불능이 될 수 있다. 우리의 목표가 당장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나 그것은 최종 목적이 아니다. 보다 선진 국가가 될 때까지 기초체력을 더 닦아야 한다. 샴페인은 그때 가서 마시자. 그래도 늦지 않다. 모두 1년 전을 생각하고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자.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임윤수〈충남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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