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바닥 民心 읽어야

  • 입력 1999년 5월 31일 19시 29분


김태정(金泰政)법무부장관의 거취가 물러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 같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오늘 러시아 몽골 순방에서 귀국하는 대로 김장관의 사퇴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김장관 개인으로 보면안타까운면이없지않으나우리는김장관의 사퇴가 불가피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김장관은 국민적 의혹으로 증폭된 재벌회장 부인―장관 부인 ‘옷로비 의혹사건’의 고소 당사자의 남편으로, 이 사건 수사의 공정성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의혹을 받는 자리에 있다. 김장관이 검찰의 최고 지휘감독자인 법무부장관 자리에 계속 앉아 있어서는 검찰이 발표할 수사결과 내용이 어떠하든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는 등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물러나는 것이 순리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 일부에서는 김장관이 입각한 지 일주일밖에 안된 지금 물러난다면 임명권자인 김대통령의 통치권에 누가 된다며 반대한다고 하지만,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단견(短見)이라 아니할 수 없다. 숲은 바로 현정권에 실망하고 등을 돌리는 민심이 아닌가.

5·24 개각에서 현직 검찰총장이던 김장관을 입각시킨 것부터 잘못된 인사였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다. 김장관은 검찰총장 재임시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관련, 평검사들이 항의서명에 나서는 등 ‘검란(檢亂)’을 부른 당사자로 국회의 탄핵소추까지 받을 뻔했다. 더구나 그는 검찰총장 임기를 남겨놓고 있었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임기보장을 공약했던 김대통령은 김총장을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옷로비 의혹사건’이 표면화되면서 뒤늦게 김총장 입각의 책임문제를 놓고 집권세력내 신주류―비주류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된 근본 요인은 현정권이 언제부터인지 민심의 동향에 눈을 돌리지 않는 독선과 오만에 빠져온 데 있다고 본다. 그들은 걸핏하면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반(反)개혁’이요, ‘수구적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번 ‘옷로비 의혹’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라고 보는 식이라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이제 김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순방외교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이반(離反)되는 민심을 다잡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민심을 잡으려면 민심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생생한 바닥 민심을 읽어야 한다. 행여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거나 흐리게 하는 세력이 있다면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모든 정치 프로그램을 내년 총선에 맞추는 듯한 정파적 정략적 정치의 틀을 새로운 세기를 위한 정치, 국민을 위한 큰 정치로 변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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