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라이시 前장관 일화 ▼
그런 가운데 서민들이 힘들게 사는 현장을 둘러본 라이시장관은 오히려 저소득층의 소득감소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재교육 투자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신념과 고집이 96년 클린턴대통령의 재선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자서전 끝부분에 가면 알 수 있다. 입각 설득 때 애를 먹였던 라이시장관은 4년 후에도 함께 일을 더하자는 클린턴대통령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치고 표연히 워싱턴을 떠났다. 미국판 목민심서(牧民心書) 같은 내용이다.
지난달 개각바람이 한바탕 불고 지나갔다. 보름여 동안 시기와 폭을 놓고 말도 많았던 개각이 있은 후 입각 인물에 대한 논란으로 스산했던 사회분위기는 ‘장관부인 옷 로비설’이 덮치는 바람에 정신없이 술렁거린다. 왜 이런가. 한국사회에는 개각 신드롬이 있다.
한번 고개를 들고 나면 개각설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개각요인이란 것도 수군거림속에서 몇순배 돈다. 관심사를 좇는 언론도 여기에 한몫한다. 자천타천(自薦他薦)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은근히 자기가 거명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본의 아니게 낭패를 보는 사람도 생긴다. 개각설이 일단 등장하면 시중의 관심이 모이는 까닭은 시민들 마음속의 변화욕구 때문일 것이다. 일상(日常)에서 겪는 짜증 불만은 새로운 것을 바라게 만든다. 또 “이번엔 누가 무슨 감투를 쓸까” 하는 사람 본연의 호기심도 발동하기 마련이다.
한국정치사를 보면 개각은 ‘용인술(用人術)’이란 면에서 권력자의 가장 효율적인 ‘견제통치술’로 이용돼 왔다. 대표적으로 고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3공화국과 유신시절에는 내각과 당직을 한묶음으로 한 당정개편은 위력을 발휘했다. ‘4인 체제’와 ‘반4인 체제’가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번갈아 부침하면서 결과적으로 1인 권력을 강화시켰다. 나라살림을 개선하기 위한 인재기용이 아니라 권력자의 정치조작에 무게가 더 실렸다. 그후 역대 정권에서도 개각의 정치적 효용성이 입증돼 왔다. 공동정권이란 틀 속에 있는 현정권이 출범 때 장관자리를 나누어 가진 것도 따지고 보면 전리품(戰利品)의 정치적 배분이다.
▼ 개각에 실망한 民心 ▼
개각은 우리 사회에서 묘한 힘을 발휘한다. 긴장감을 주면서 분위기 일신의 기능을 갖는다. 정치와 관(官)이 아직도 사회를 주도하는 까닭에 분위기를 바꾸는 효과가 크다. 개각에 따르는 이런저런 사안을 감안해 사실 현정권도 국정 분위기 일신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법하다. 아물지 않는 대량실업의 고통, 국민연금 및 의료보험과 관련한 사회적 불만, 구조조정과 개혁사정에 따른 갈등은 전반적으로 사기를 한껏 끌어내렸다. 특히 최근 공무원사회는 ‘몸 사리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냉소적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그런데 국회의원총선거는 바로 1년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 아닌가. 현정권도 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를 걸었던 국민은 개각 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각종 규제와 행정절차에 낙심하고 무력감을 느낀다. 게다가 ‘장관 부인 옷 로비설’로 기대는 다시 한번 곤두박질쳤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대통령은 앞으로도 여러 이유에서 개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계산과 의도가 많이 깔리는 개각일수록 앞으로는 그럴듯해도 뒤로는 크게 밑지고 만다. 결국 ‘사람갈이’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실망한 민심은 끝내 떠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번 경험하지 않았는가. 라이시 자서전의 일독을 권한다.
최규철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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