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빌 클린턴대통령의 위증과 사법절차방해혐의에 대해 무죄결정을 내리던 2월의 바람불던 금요일. 힐러리 로댐 클린턴은 친구 해롤드 익스를 백악관으로 불러 난생 처음으로 남편이 아니라 자신이 공직선거에 나서야 할지를 의논했다. 힐러리는 민주당원들이 자신에게 뉴욕주 상원의원선거에 출마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이미지가 수동적인 피해자에서 정치적 비중을 지닌 인물로 변해가는 것에 대해서도 기뻐했다. 미국 상원의원 1백명 중 한명이 되는 것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인가. 상대 후보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뉴욕의 악착스러운 기자들 등쌀을 견뎌낼 수 있을까.
클린턴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01년1월이 되면 힐러리는 1974년 26세의 변호사로서 아칸소주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처음으로 남편의 정치적 경력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만약 그가 출마하게 되면 적어도 뉴욕에서만은 클린턴부부의 역할이 바뀌게 될 것이다. 힐러리가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앞으로 나서고 클린턴대통령은 무대뒤에서 그를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지난달초에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내리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힐러리는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남편과 자신의 내조 역할만을 이야기했다. “나는 남편의 정치적 꿈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남편의 꿈이 그와 나,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커다란 목표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힐러리가 남편의 충실한 보조자역할을 하는 것은 겉모습뿐이고 그의 본모습은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펴는 쪽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힐러리는 두가지 측면을 모두 갖고 있지만 남편의 보조자역할을 할 때 더 편안한 마음으로 더 큰 능력을 발휘한다.
질문을 다시했다. “자신만의 유권자를 갖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달라진 점이 없습니까.” “있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공직에 출마한 사람이 궁극적인 책임과 권위를 짊어지게 되니까요.”
클린턴대통령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따뜻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석에서는 냉담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힐러리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차가워 보이지만 사적으로는 남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잘 챙겨주는 따뜻한 면을 가지고 있다. 해롤드 익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2월의 그날도 힐러리는 커다란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상자를 들고 백악관 직원들을 찾아갔다.
선거에 대한 태도에서도 클린턴대통령과 힐러리는 차이를 보인다. 클린턴대통령은 선거운동중 경험하는 모험과 도전을 즐기지만 힐러리는 겁을 먹는 편이다. 상원의원 출마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클린턴대통령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이후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힐러리는 상원의원출마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4월말 그가 대통령 부인 자격으로 컬럼비아대에 들러 교육문제에 대해 연설할 때 보좌관들은 그 자리가 선거에 출마해도 좋을지 분위기를 파악해보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교육문제는 그가 출마할 경우 가장 자신있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분야다.
처음 힐러리의 상원의원출마설이 나왔을 때 백악관 고위관리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에게 상원의원출마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냈던 찰스 렌젤 하원의원이 현재 뉴욕주 상원의원인 모이니한이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힐러리에게 전화했을 때 그는 자신이 출마할 경우 얼마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퍼부어 그를 놀라게 했다. 클린턴대통령 역시 힐러리의 출마를 환영했다. 대통령의 친구들은 대통령이 지난해 스캔들에 시달린 이후 곤혹스러운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힐러리를 선거에서 당선시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힐러리가 선거에 출마한다고 해도 남편의 후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컬럼비아대 연설도 그 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는 교육개혁을 위해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서도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남편이 아칸소에서 교육체계개선을 위한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나에게 요청했다”고 회고하면서 그 위원회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남편의 지도력 덕분에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힐러리는 정부차원의 문제를 언급할 때는 자유주의자이지만 가족에 관해서는 보수적이다. 그는 이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태도를 경멸했고, 젊은이들은 21세가 될 때까지 성경험을 자제해야 하고 부모들은 어른의 권위를 다시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건문제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아직 구체적으로 표현된 적이 없다. 상원의원으로서, 또는 일반 시민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이룩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관심을 쏟는 것중 대부분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생산적인 시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과 관련돼 있습니다. 나는 경제정책 교육정책 입양문제 복지정책 보건 등 많은 것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이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이슈들이 서로 관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악관 보좌관들은 최근 클린턴대통령이 외조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대통령에 대한 힐러리의 영향력을 축소시켜려 애썼던 보좌관들도 이제는 생각을 바꿨다.
클린턴부부의 관계는 아직 험악하지만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것 같다. 힐러리의 친구들은 그가 지난해 남편과 헤어질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결혼서약과 딸 첼시에 대한 생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친구들의 주장에 따르면 힐러리가 대통령 곁을 떠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힐러리의 친구들과 보좌관중 일부는 그가 선거기간 중 상대후보의 공격과 언론의 지독한 감시를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이에 힐러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나를 막지 못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갑자기 큰소리로 웃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일을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