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남북 당국간 회담이 곧 성사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갖는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북측에 대한적십자사 등을 통해 식량과 비료, 의약품을 꾸준히 지원해 왔기 때문에 그 성과가 나타났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우는 배경이다. 햇볕정책이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햇볕정책에 대해 자신의 체제를 와해시키려는 전략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런 인식이 깨끗이 가시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북측 고위인사들을 만났으나 한국 입장을 얼마나 납득시켰는지는 아직 분명치않다. 다만 페리는 한미일(韓美日)이 공동 협의해 마련한 대북권고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햇볕정책의 진의가 북한체제의 존립을 해치는데있지않음을분명히했을것이다.
김대통령은 지난해 미국과 일본, 금년들어 중국과 러시아를 각각 방문해 4강순방 정상외교를 마무리했다. 특히 북한의 동맹국인 중―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어냈다. 이번 김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서 옐친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설득을 약속한 것도 하나의 성과라고 정부당국은 강조했다. 이런 일련의 4강외교가 한반도 안보를 안정시키고 더 나아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촉매적 환경이 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당연하다.
그러나 남북대화 분위기에 긍정적인 이같은 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북한의 태도다. 북한은 올해 2월 그들의 이른바 정당사회단체 연합회의에서 결정했다며 남북고위정치회담을 제의했다. 북측의 이 제의에는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폐지 등의 상투적인 전제조건이 따라붙었다. 북한의 연합회의가 남북당국간 회담문제를 다루는 주체는 아니다. 그래서 고위급회담을 논의하는 데는 북측의 전제조건들이 배제됐을 가능성도 크지만 본질적 태도가 바뀐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어떤 형식이든 남북당국간대화가 복원되는 게 바람직하지만 우리측 긍정적 분위기에만 젖어 너무 성급하게 결실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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