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는 미국의 국익을 넘어 세계의 평화와 정의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세계를 누비며 활발하게 진력하고 있다.
김근태는 무서운 억압과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고문을 이겨내며 억울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았는가.
▼카터-부시 본받기를 ▼
카터의 활동상을 보면서 한국의 전직 대통령과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직 퇴임후 설립한 카터재단은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이나 어린이를 위한 구호활동에 앞장서면서 한반도의 평화구축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좀 다르지만 역시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부시가 투자협의를 위해 조용히 서울을 방문해 실리 외교 활동을 벌인 것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한국의 퇴직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후임 대통령을 걸고넘어지거나 서로에게 험악한 말의 폭력을 휘두르며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한다.
급기야 전직 대통령인 김영삼씨는 퇴임 이후 처음으로 일본 방문 길에서 붉은 색 페인트가 들어 있는 달걀 세례를 받는 수모를 당하고야 말았으니 이 일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누구나 정치적인 테러행위는 이 땅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하며 어떠한 폭력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 특히 정계에서는 직 간접의 정치적 폭력이 난무했다.
전직 대통령이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추구한다거나 나라의 발전을 위한 책임있는 자원 봉사의 역할을 담당하기보다는 다시 야당으로 돌아가 정권쟁탈에 도전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권력이 이토록 모진 것인가. 이번 사건만 해도 한 노인의 개인적인 분노에서 비롯된 단독 행동의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대통령 퇴임 이후 전혀 예측할 수 없이 들쭉날쭉한 행동으로 세상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 김영삼 전대통령의 언행에 분노한 사람들은 오히려 대리만족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별 뚜렷한 명분도 없이 일본행을 하게 된 것부터가 결코 국민에게는 석연치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김영삼씨가 일본에서 한 발언은 우리를 더욱 절망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어느 역대 대통령도 겪어본 적 없는 봉변을 당한 당사자로서는 격앙된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정치권위 찾는데 불과 ▼
그러나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현 정권을 ‘살인정권’ ‘굶주린 이리떼’로 규정하고 “올해 말로 정치적으로 김대중대통령의 임기가 끝난다”는 ‘독설’을 서슴지 않은 것은 참으로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국가부도 사태로까지 나라의 경제위기를 몰고 갔던 전직 대통령으로서 엄청난 실직자와 노숙자의 비극에 대해 무엇인가 해결하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일본에 가서까지 오직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극단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를 정말 절망하게 만든다.
김영삼씨가 일본에서 험구를 쏟아붓던 바로 그 기간에 도쿄 외곽에서는 재일 동포들이 ‘외국인등록법’에 의해 부당하게 당하고 있는 인권침해를 회복하고 그 오랜 한을 풀기 위한 모임을 가졌다.
김씨의 언행은 한일 양국의 기독교 대표들이 ‘외국인등록법 대책을 위한 심포지엄’에 참석해 일본정부에 책임을 묻고 올바른 역사청산을 요구한 것과는 참으로 대조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시와 카터 그리고 김영삼. 국익을 위해 그리고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시간과 정력을 바치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과 나라의 온갖 어려움에는 아랑곳없이 지역적인 정치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여전히 자신의 권위만을 위한 정치활동을 계속하려는 한국의 전직 대통령. 덕(德)을 마음에 두고 실천하는 군자(君子)는 사라지고 오직 마음이 땅(地)에 연연하는 소인(小人)만 남아 있다는 논어(論語)의 말씀(君子懷德 小人懷土)이 떠오른다.
제발 지역주의를 내세워 나라를 어지럽히는 정치행위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이재정<성공회대 총장>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