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뭘하려고 뚝딱거리는 거야?
내 틀을 짜고 있어요.
그네는 캔버스라고 하지않고 틀이라고 말했다.
뭘 한다구?
그림을 그릴 거예요.
나는 보통 때처럼 꼬치꼬치 묻지않고 그네를 내버려두었다. 윤희도 아무런 설명없이 캔버스에 천을 입혀서 찬찬히 못을 박았다. 그네는 천이 팽팽히 당겨졌는가를 살피고나서 나에게 눈길을 돌렸다.
날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나는 그네가 무슨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그 캔버스를 어디 높은데라도 올려놓아 달라는 뜻으로 알고 얼른 일어나 부엌 봉당으로 내려갔다. 윤희는 나를 말리지 않고 작은 의자를 집어들더니 내 앞에 놓았다.
거기 앉아요.
나는 영문도 모르고 나무의자에 엉거주춤 앉았고 윤희가 내게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내 자세를 조금 더 창문 쪽으로 엇비스듬하게 돌려 앉히고 얼굴을 자기 쪽으로 돌리도록 머리를 잡아 비틀었다.
뭘하는 거야?
라고 쑥스러워진 내가 물었을 때 그네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을 그릴 거예요. 오래도록 저 액자 안에 남아 있도록….
나는 픽 웃었다.
새삼스럽게….
윤희는 그 순간 너그럽지 않은 시선을 하고서 나를 노려 보았다.
새삼스럽다뇨.
중얼거리고나서 그네가 팔레트에다 튜브에 든 물감을 듬뿍듬뿍 짜내놓기 시작했다.
현우씬 이미 여길 떠났잖아요. 나는 화폭 안에 처음의 당신을 남겨놓을 작정이어요.
나는 그네가 가볍게 농담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윤희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네는 붓을 들고 나의 윤곽을 그리고 있는지 명암을 살피려고 눈을 가늘게 뜨기도 하고 연신 나와 화폭을 번갈이 바라보며 붓질을 계속했다. 그네는 붓질을 하면서 말을 꺼냈다.
오래 끌진 않을 거예요. 방학이 다 가기 전까지는 당신 아무데도 못가요.
그 말은 그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나와의 생활에 대하여 말하는지 잘 분간이 되질 않았다. 나는 좀 부아가 난 채로 심술궂게 되받았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난 여길 떠날 거야. 나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지않아.
윤희는 붓질을 멈추었다.
이제 겨우 현우씨 그림자를 포착했어요. 나는 아직 눈 감고 당신의 잔영을 그릴 정도는 아니어요. 그러니까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는 당신의 그림을 완성할 수 없을지두 몰라요.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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