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이상한 도둑 하나가 역시 횡설수설하는 내용을 검찰이 사실무근이라고 극구 변명을 해 주느라고 진땀을 뺀 적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여자 몇 사람이 옷가지를 사러 가서 다툰 일을 가지고 검찰이 또 뒤치다꺼리를 해 준 것도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검찰 가장 큰 피해자 ▼
애지중지하는 부하가 술김에 한 말 한마디로 김태정전법무장관은 단숨에 낙마하고 말았다. 세상이 뒤집혀도 끄떡없을 것 같던 사람의 퇴장치고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은 이래저래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그러나 김전장관 한 사람이 물러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가장 큰 피해자는 검찰일 것이고 인사권자인 김대중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전장관에게는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다. 우선 불행한 일이긴 하지만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가장 전면에서 실천해야 하는 한국 검찰총수의 입장에서 보면 김전장관은 김영삼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 옳았다. 검찰총장이 두 정권을 넘나들면서 그 직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내면적으로는 두 살림을 차렸다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종기 변호사에 의해 불거진 대전법조비리사건 때만 하더라도 그렇다. 존경받는 상관이 되려면 공정한 수사를 핑계로 부하들의 옷을 벗기기에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남으로써 부하 한 사람이라도 더 보호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러나 희생양을 찾기에 급급한 안타까운 몸부림을 했을 뿐이다.
자신의 직을 유지하기 위해 흘리는 눈물을 두고 그 부하나 국민은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옷 사건이 터졌지만 그는 다시 살아 남았다. 인사권자가 명분을 위해 “마녀재판은 안된다” “여론에 밀릴 수는 없다”고 다소 처연한 총애의 모습을 보일 때도 자신은 그것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어야 했다.
김전장관은 불과 며칠전 박순용 검찰총장과 더불어 개혁을 위한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5회에서 7회에 이르는 검사장은 물론 총장과 동기인 사시 8회의 검사장급 7명도 모조리 퇴진시키는 결정을 한 바 있다. 그리고 “옷을 못 벗겠다”는 며칠간의 내홍을 거쳐 휴일도 놀란 ‘혁명적 검찰인사’가 뒤따랐다. ‘원치 않는 승진’이 포함된 검사장급 33%의 교체는 검찰 초유의 일이었다.
▼독선으로 잇단 무리수 ▼
여기에는 개혁을 구실로 한 독선과 아집 그리고 비민주성이 깔려 있다. 검사장은 군대의 조직으로 비유하자면 장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장군이 하루 아침에 양성될 수 없듯이 노련한 검사장도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국가가 30년 넘게 녹을 주면서 키운 인재들이다. 그들의 노회한 경륜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검찰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김대통령이 흠이 있지만 끝까지 자신을 아끼듯이, 인재를 가벼이 보지 않는 철학하고도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전장관은 대전법조비리에서 이종기변호사의 말 몇 마디로 심재륜전대구고검장을 비롯한 4명의 검사장을 퇴진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이번에 5회에서 7회 7명, 8회 7명 등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 ‘장군’ 18명의 별을 떼었다.
그러고도 자신은 살기를 원했으며 조직도 온전하기를 바랐다. 한 마디로 무리이다.
신임 김정길장관은 검찰에 뼈를 묻고자 하는 검사들을 쫓아내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나이 든 사람이면 무조건 반개혁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비민주적 발상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김대통령과 김종필총리도 70을 넘긴 노정객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검찰을 검사에게 돌려주어야 검찰이 살 수 있다.
배종대<고려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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