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은 대부분 실험학문이므로 연구비 없이는 아주 단순한 연구도 진행하기 힘들다. 1,2년의 연구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축적되지도 않아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다.
효율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선진국에서도 기초과학의 다양한 연구에 꾸준히 투자하는 것은 기초과학의 육성에는 일관된 투자 외에 첩경이 없음을 보여준다. ‘빨리 빨리’란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당장 연구효과가 기대되지 않는 분야에도 일관되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어떤 분야의 연구가 나중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요즘 시행되거나 입안되는 과학정책과 연구비 지원정책은 몇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조삼모사식 정책변화이다. 정부가 바뀌면서 기존 연구비 지원 계획이 취소되거나 연구비 지급 일정이 기약없이 늦추어졌다. 일관성없는 정책변화는 지속적인 연구의 맥을 끊을 수밖에 없다.
둘째, 새 정부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몇 분야의 연구자에게만 과감히 투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유도하고 있다. 작은 규모의 연구 지원제도를 대폭 축소한 상태에서 엄청난 액수의 연구비가 몇몇 개인에게 집중되는 제도이다. 이같은 방식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키우는 데는 성공적일지 몰라도 기초과학 육성정책은 될 수 없다.
셋째, 국제 논문의 발표 편수를 기준으로 하는 우수 연구자의 선정기준이 비과학적이다. 기초과학의 특성상 지난 몇년간 연구여건이 좋았던 연구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논문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새로 한국에 뿌리내린 젊은 연구자들이 소외되고 연구비의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심화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새 정부의 정책은 공동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모여 수행하는 연구와 기업이 참여하는 연구 등을 우선 지원하고 있다. 시너지 효과가 있는 연관 분야의 공동연구가 장려되는 것은 좋지만 연구의 성격과 관계없이 연구비를 매개로 반강제로 이루어진다면 문제다.
과학은 연구비 없이는 하루도 연구실을 유지하기 어려운 학문이다. 꿈을 가지고 이 땅에서 연구하려는 젊은 과학도들을 절망시켜서는 안된다.
송기원(연세대교수·생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