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더 이상 조사할 필요 없다」더니

  • 입력 1999년 6월 9일 19시 30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어제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의혹에 대해 여당 주도하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함에 따라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가 이루어지게 됐다. ‘옷로비’ 의혹에 대해서와는 달리 신속히 내려진 김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옳은 결정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이번 ‘파업 유도’ 의혹은 그 성격상 ‘옷로비’ 의혹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사안이라는 점에서 그 진상은 하루라도 빨리 밝혀져야 한다.

의혹의 핵심은 법을 집행하는 국가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이 노동현장의 파업을 유도했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공권력의 불법행위로 정권의 도덕성은 물론 국가의 존재기반에마저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크다. 그렇다고 불거진 의혹을 적당한 선에서 덮으려 한다면 더 큰 화를 자초할 것이다.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히고 엄정한 사후처리를 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먼저 이번 의혹에 대해 청와대관계자가 보인 치졸한 대응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관계자는 8일 “검찰의 자체조사 결과 진부장(진형구 전대검공안부장)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더 이상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무리 취중발언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구체적이어서 충분히 의심받을 만한 중대사안에 대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쉽게 단정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하루 뒤 대통령의 진상규명 지시가 있자 “(어제 얘기는)어제까지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란 해명이다. 이런 식이어서는 정부 여당이 국정조사에 나선다고 해도 그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위기돌파용’ ‘봉합용’ 국정조사란 의심을 받게 된다.

이번 ‘파업 유도’ 의혹은 당장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을 부르고 있다. 현정부가 사회적 합의기구로 내세운 노사정위원회가 사실상 붕괴된 데 이어 이번 의혹마저 그 진상이 밝혀지지 못한다면 앞으로 노사문제를 풀어갈 명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공기업 구조조정도 난관에 부닥칠 것이다.

기왕 국정조사에 나서기로 했다면 굳이 이번 ‘파업 유도’의혹에만 국한시킬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옷로비’의혹, 3·30재보선의 국민회의 ‘50억원 선거자금설’ 등에 대해서도 재조사를 벌여 채 풀리지 않고 있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켜야 한다. 국정조사가 어렵다면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는 등 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부가 맞고 있는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철저한 국정쇄신밖에 없다. 참다운 국정쇄신은 모든 의혹의 진상을 깨끗이 밝혀낸다는 정부 여당의 의지가 구체화될 때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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