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說」이 진실이 되는 사회

  • 입력 1999년 6월 9일 19시 30분


근거가 확실치 않은 ‘설(說)’이나 유언비어가 민심을 끌어가는 사회는 건강한 공동체가 못된다. 밑도 끝도 없는 말들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면서 그 내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일쑤다. 소문 풍문 수군거림 입방아가 바로 그런 현상을 일컫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언로가 막혔던 박정희(朴正熙)정권말기에는 ‘카더라 방송’이나 유비(流蜚)통신이 나중에 사실로 판명되는일이많았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흥미와 관심을 갖는 이슈가 존재하고, 그것에 대해 근거있는 정보를 얻을 수 없을 때 설이 판치게 된다. 군중심리학의 창시자 구스타브 르봉은 비조직화된 군중일수록 설에 영향받아 행동한다고 했다. 그러나 군중보다 한 걸음 발전된 것이 공중(公衆) 개념이다. 20세기 최고의 칼럼니스트이며 정치사회학자인 월터 리프만은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주체가 공중이라고 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공중의 견해, 즉 민심을 전하는 언론을 향해 ‘마녀사냥’이라고 몰아붙이니 설이 난무하게도 됐다.

▽6월10일은 두가지 역사적 기념일이다. 일제통치기인 1926년 6·10만세운동과 전두환(全斗煥)정권 말기인 1987년 6월시민항쟁을 결집시킨 6·10국민대회다. 특히 6월시민항쟁은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에 대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제기한 은폐 조작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폭발했다. 경찰은 ‘탁’치니까 ‘억’하고 쓰러졌다는 조작 발표를 내놓았다. 그러나 국민은 처음에 진상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설쪽을 더 믿었다.

▽요즘 나도는 설들이 어느 정도의 ‘폭발력’을 갖게 될지 우려하는 소리가 많다. ‘고급 옷 로비 의혹사건’에 여권 핵심의 사모님들이 다수 연루됐다는 몸통설이 제기됐다. 거기다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도 정부당국이 부인해 설로 남았다. 그러나 무조건 부인하고 감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설들이 사실로 드러날 때 국민의 분노는 더 커진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는가.

〈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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