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김전장관이 검사장이 되면서 변해버렸다. 원로 법조인들은 그 이유를 ‘권력’에서 찾고 있다. 권력과출세에대한지나친 집착이 그를 망쳤다는 것이다.
그는 검찰에서 ‘불사조’로 통했다. 94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 그는 서울지검장 자리를 놓고 사시 동기인 최영광(崔永光)검찰국장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영광’은 최국장에게 돌아갔고 그는 쓸쓸히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검찰총장 경쟁에서 이김으로써 ‘최후의 승자’가 됐다. 이번에는 최고검장(당시 법무연수원장)이 패장(敗將)으로 검찰을 떠났다.
권력의 정상에 오르는 것 못지 않게 지키는 것도 어려웠다. 그는 1월 심재륜(沈在淪)대구고검장으로부터 ‘정치검사 퇴진’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심고검장은 그와 함께 특수부 검사의 자존심을 지켜온 인물. 그런 만큼 김전장관이 받은 충격은 컸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의 확고한 신임으로 자리를 지켰다.
그의 승리의 배경에는 남다른 ‘충성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총장 시절 “나는 오직 한사람(대통령)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고 말한 일이 있다고 측근은 전했다.
그러나권력과출세는영원하지 않은 법. 그는 ‘파업유도’ 발언 파문으로 ‘검찰 사상 최악의 총장과 장관’이라는 오명(汚名)을 안고 야인(野人)으로 돌아갔다.
원로 법조인들은 김전장관의 권력욕 못지않게 권력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에 대한 ‘충성심’만 중요시해 검찰과 권력 모두의 비극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이수형<사회부>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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