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는 이 자화상을 몸이 아프기 전이라니까 한 이삼 년 전에 새로 그려 넣었다. 내가 짊어지고 있던 배경과는 달리 좀 더 밝은 비둘기 털빛 같은 회색이 두텁게 칠해져 있고 붓의 터치는 훨씬 거칠고 원숙해진 느낌이었다. 강조된 광대뼈와 눈 밑의 가녀린 주름살과 희끗한 머리카락이며 여러 색깔이 중첩된 뺨은 윤희의 사그라진 젊음과 고독을 드러냈고 눈빛은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네는 당시에 누군가와 함께 나를 바라보았던 느낌대로 묘하게 푸근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다른 색깔과 분위기로 묘사된 서른 두 살의 젊은이와 사십대 중반의 여인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쪽 현실계를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네는 바로 내 등 뒤에서 저 먼곳이 아니라 나의 어깨 부분을 응시하면서 전송하는 어머니처럼 서있었다. 이 그림은 극히 개인적이지만 지난 시기를 기록한 어느 필름의 장면보다도 더욱 한 시대를 담아내고 있는 듯했다. 당시에 내가 애타는 마음으로 불안하게 바라보았던 곳과 그네가 나의 등 뒤에서 넘겨다 본 곳은 세계의 어느 방향으로 가는 길이었을까.
화단에 과꽃이며 코스모스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윤희의 학교는 개학을 앞두었고 살아남아 치욕스런 재판을 받았던 광주의 벗들은 서른 여섯 번째의 광복절을 맞아서 특별사면과 형집행정지와 가석방 등으로 풀려났다. 김 선생을 빼고는 관련자들도 거의 석방이 되었다. 어쨌든 살아남은 사실은 감격스런 일이었지만 그 뒤로 십여 년을 그들은 목숨 값을 빚지고 말았다는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 무렵에 윤희는 나의 초상을 거의 마무리 했다. 그것은 내가 있었던 시대가 남긴 젊은 날의 마지막 얼굴이 되었다.
계절이 바뀌기 직전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고 비가 왔다. 초여름부터 시작되는 장마란 끈끈하고 후덥지근하게 데워진 습기가 대기를 채우지만, 가을의 문턱에서 비 오는 날이면 보다 을씨년스러운 한기가 썰렁하게 하늘을 채운다. 그리고 아직 마르지않은 나뭇잎들도 거세게 흔들리는 가지를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