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의 말하기와 듣기

  • 입력 1999년 6월 11일 19시 37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엊그제 저녁 국민회의 소속 의원 및 당무위원들과 함께 한 청와대 만찬에서 최근의 ‘옷로비’의혹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의혹사건 등과 관련한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유임시켰던 김태정(金泰政)법무부장관을 결국 경질하게 된 이유와 ‘옷로비’의혹사건 언론 보도에 대한 유감 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먼저 김태정검찰총장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한 데 대해서는 “대선때 여당인 한나라당이 이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법률가의 양심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비자금 관련 수사를 선거후로 미뤘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법조인의 자세를 갖고 있다고 분명히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옷로비’의혹사건때 김법무부장관을 해임하지 않은 것은 검찰수사 결과 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대통령은 또 ‘옷로비’의혹사건에 대해서는 몇몇 장관부인들의 행태는 잘못된 것이지만 “매 한 대 맞을 잘못도 있고 감옥에 갈 잘못도 있다. 언론도 이번에 한 일에 대해 한번 검토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말꼬리를 잡으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김대통령의 ‘말하기’가 자기논리의 합리화에 치우치고 있다는 우려를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안이든 한 측면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면 독단에 빠질 위험이 크다. 그리고 독단에 빠진 논리는 자칫 문제의 본질을 외면케 할 수 있다.

김태정전법무장관의 경우 그가 지난 대선때 검찰총장으로서 이른바 ‘DJ비자금’수사를 유보한 것이 과연 ‘바른 법조인의 자세’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설령 대통령의 말대로 비자금수사 유보 결정이 김태정씨의 긍정적인 면이라면 ‘정치검사’로까지 몰린 그의 행적은 부정적인 면이다. 장관임명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긍정과 부정의 양측면을 종합적으로 봐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했다고 볼 수 있는가. ‘옷로비’사건을 ‘매 한 대 맞을 잘못’으로 규정하는 것도 왜 그 ‘큰일 아닌 일’에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이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됐는지, 문제의 근원에 대한 통찰이 결여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언론에 대한 유감도 그에서 비롯됐다고 보인다.

비록 정부에 실망한 국민이라도 김대중정부의 실패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정부의 실패는 바로 나라의 위기, 국가의 실패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정부가 성공하려면 김대통령부터 나라의 위기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던 1년 반 전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하기’보다는 ‘듣기’에 힘써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민의(民意)에 귀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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