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성수대교와 라스포사

  • 입력 1999년 6월 11일 19시 37분


요즘의 어수선한 사회분위기를 보노라면 5년전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떠오른다. 이 대형참사를 찬찬히 되살펴보면 최근 라스포사를 무대로 펼쳐진 고관부인들의 ‘옷로비’ 의혹사건, 그리고 잇따라 터진 ‘조폐공사 파업유도’발언 사건과도 몇가지 공통점 또는 유사성을 찾아낼 수 있다.

우선 성수대교가 강남중심지역을 향해 있고 라스포사도 강남 중의 강남인 논현동에 있다는 지리적 연관성도 생각할 수 있으나 그보다는 시기적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사건 모두 프로스포츠에서 많이 얘기되는 이른바 ‘2년차 징크스’를 조심해야하는 집권 2년차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집권 초기 90%의 지지율을 뽐내던 김영삼(金泳三·YS)정권의 2차연도인 94년 초 광주 상무대 비자금사건을 시작으로 이회창총리의 전격경질, 민자당의 이영덕총리 임명동의안 국회단독처리, 김현철씨의 한겨레신문 상대 20억원 명예훼손 소송제기, 민자당의 3개지역 보선 패배, 인천북구청 세무비리사건에 이어 10월21일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이다. 다리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붕괴된 것이지만 그것은 단지 다리가 무너진 것이 아나라 그동안의 비리와 부실의 총체적 결과이자 심각해진 민심이반 현상의 상징이요, 나아가 YS정부와 국민간의 ‘민심의 가교’가 무너져내린 것이다.

YS정부는 이런 붕괴사고 이면의 상징성을 읽어내지 못하고 단순히 물리적 원인, 그것도 전(前)정권의 책임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이것이 더 큰 비극이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박지원대변인은 성명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모든 책임을 습관대로 전정권에 전가한다면, 서울을 도읍지로 정한 태조 이성계의 잘못으로 돌릴 것인가.’

김대중(金大中·DJ)정권은 어떤가. 외환위기 수습, 주변 강대국외교의 성공으로 인기가 높았으나 2년차인 올해들어 갖가지 사건과 악수(惡手)로 상반기도 지나기 전에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검사들의 서명파동, 고관집 도둑사건, 정부조직법 등 국회날치기처리, 그리고 장관부인 옷로비 사건, 국민회의 한겨레신문 상대 101억원 손배소송제기, 서울 송파갑 등 재선에서 여당 완패에 이어 ‘파업유도’발언이 터졌다. 두 정권의 2차연도 사건일지를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국회에서의 날치기(또는 단독)처리, 둘째는 언론사 상대의 거액 소송제기다. 셋째는 ‘이회창’에게 날개를 달아준 YS와 DJ의 악수(惡手). YS는 94년 4월 통치권에 대한 공개적 반발’을 이유로 이회창총리를 임명 4개월만에 내쫓았으나 쫓겨난 이씨의 인기는 더욱높아졌다. 5년여 뒤 이회창은 옷사건 덕택으로 재선에서 압승해금배지를 달았다.

다시 ‘다리’와 ‘옷’으로 돌아가자. 가장 본질적인 유사점은 대통령이 두 사건을 보는 시각이다. YS가 다리붕괴사고를 단순한 사건, 그것도 전정권의 책임이 큰 것으로 보고 그것이 상징하는 속뜻을 보지 못했듯이 DJ는 옷사건의 본질을 헤아리지 못했다. DJ는 이 사건을 법리적인 측면만 보았다. 법무장관 부인의 법률위반여부만 보려 했지 그 이전의 도덕성, 국민정서는 외면했다. 더욱이 ‘다리’사건에서 YS정권이 그랬듯이 이번 ‘파업유도’사건에서 청와대와 여당측이 보인 전(前)정권탓 타령은 5년의 시간차가 있는데도 너무나 흡사하다. 청와대측이 ‘파업유도’에 대한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한 사실을 발표하면서 한 말은 이렇다.

“과거의 관행에 따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시정해야 하고….”

마치 남의 얘기하듯 한다. 그러나 ‘파업유도’가 있었던 시점은 분명히 이 정권이 한창 개혁을 외칠 때였다. 여권에서는 개혁이 제대로 안되는 이유로 ‘과거 악습의 잔재’를 강조하지만 누가 봐도 반개혁적인 인물이 권력 주변과 여권내에 득실득실하다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정치학자는 이승만전대통령과 김대통령의 공통점을 얘기한다. 두 분 모두 ①73세의 노령에 집권한 것 ②독립운동(이승만)과 민주화운동(김대중)으로 쌓은 카리스마 리더십 ③친일파(이승만)와 반개혁세력(김대중)을 등용한 점을 꼽는다. 그리고 최근에는 여기에다 ④민심에 눈과 귀가 어둡고 독선적인 점, 주변에 ‘노(NO)’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추가한다.

김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이 이승만 또는 김영삼전대통령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왜 비교되는지를 새겨봐야 할 것이다.

어경택〈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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